08월 25일(녹) 연중 제21주일
Twenty-first Sunday in Ordinary Time
많은 사람이 가려고 하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은 연중 제21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입니다. 구원의 결정적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와서 유다의 선민사상이 구원의 보편 사상으로 완성됩니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으며 누구에게나 하느님 나라가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 될 꼴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제1독서는 제3이사야서(56-66장)의 말씀으로 이사야 예언서의 주제인 구원의 보편 사상이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바빌론의 유배에서 고생했던 유다인들은 민족의 수난 체험을 통해 주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인들은 보잘것없는 자신들의 위치와 그 한계를 깨닫고 더 큰 영원한 가치에 희망과 기대를 겁니다. 고통과 고난을 통해 유다인들은 민족의 페쇄성과 선민사상을 뛰어넘어 개방적 구원의 보편 사상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모여와 하나가 되는 세상이 오고 동서남북 곳곳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모여올 그날을 희망합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이 모여와 주님께 감사와 찬미의 예물을 바칠 그 꿈의 미래를 희망합니다.
제2독서는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견책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꾸지람을 들어도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이들을 더욱 꾸짖으시고 당신 자녀로 여기는 자들에게 더욱 매를 드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육의 아버지를 훈육자로 모시고 존경해 왔다면, 영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매는 당장에는 아프지만 바로 그 매를 통해 기쁨과 희망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매는 아프고 꾸지람은 괴롭지만 주님 사랑의 매와 그 꾸지람을 통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 사랑의 매로 인해 첫째가 될 꼴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을 더 치시는 것입니다.오늘 복음은 루카 복음입니다.
오늘 복음은 좁은 문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아무나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지는 못합니다. 모두들 커다란 문과 널찍한 길로만 가기 때문입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 쪽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작고 길이 비좁아서 찾는 사람들이 적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만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다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 합당한 노력과 대가를 치러야만 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꼴찌가 될 첫째 사람들이 있고 첫째가 될 꼴찌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 이사야서 66,18-21 <그들은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데려 오리라.>
해설) 유배 생활로 고생했던 유다인들은 민족의 수난을 통해 주님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고난을 통해 유다인들은 개방적인 보편 사랑의 마음을 지니게 됩니다. 뭇 민족들이 모여와 하나가 되는 세상, 동서남북 곳곳에서 새 예루살렘으로 모여올 그날을 희망합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에 모든 민족들이 모여와 주님의 영광을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8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19 나는 그들 가운데에 표징을 세우고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타르시스와 풋, 활 잘 쏘는 루드, 투발과 야완 등 뭇 민족들에게 보내고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내 영광을 본 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리니 그들은 민족들에게 나의 영광을 알리리라. 20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깨끗한 그릇에 제물을 담아 주님의 집으로 가져오듯이 그들도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 동포들을 주님에게 올리는 제물로 말과 수레와 마차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 나의 거룩한 산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1 그러면 나는 그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사제로 더러는 레위인으로 삼으리라.”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 First Reading, Isaiah 66:18-21
18 I am coming to gather every nation and every language. They will come to witness my glory. 19 I shall give them a sign and send some of their survivors to the nations: to Tarshish, Put, Lud, Meshech, Tubal and Javan, to the distant coasts and islands that have never heard of me or seen my glory. They will proclaim my glory to the nations, 20 and from all the nations they will bring all your brothers as an offering to Yahweh, on horses, in chariots, in litters, on mules and on camels, to my holy mountain, Jerusalem, Yahweh says, like Israelites bringing offerings in clean vessels to Yahweh's house. 21 And some of them I shall make into priests and Levites, Yahweh says.
+ 히브리서 12, 5-7. 11-13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신다.>
(해설) 주님은 사랑하는 이를 꾸짖으시고 당신 자녀로 여기는 자에게 매를 드십니다. 주님께서는 자녀들이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하기 위해 매를 드시는 것입니다. 매는 아프고 꾸지람은 괴롭지만 주님의 매와 꾸지람을 통해 착한 자녀는 새 사람이 됩니다. 주님 사랑의 매로 인해 꼴찌지만 첫째가 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5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시면서 내리시는 권고를 잊어버렸습니다. “내 아들아, 주님의 훈육을 하찮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아도 낙심하지 마라. 6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하신다.” 7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11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12 그러므로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13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 Second Reading, Hebrews 12:5-7, 11-13
5 Have you forgotten that encouraging text in which you are addressed as sons? My son, do not scorn correction from the Lord, do not resent his training, 6 for the Lord trains those he loves, and chastises every son he accepts. 7 Perseverance is part of your training; God is treating you as his sons. Has there ever been any son whose father did not train him? 11 Of course, any discipline is at the time a matter for grief, not joy; but later, in those who have undergone it, it bears fruit in peace and uprightness. 12 So steady all weary hands and trembling knees 13 and make your crooked paths straight; then the injured limb will not be maimed, it will get better instead.
+ 루카 13, 22-30
<동쪽과 서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해설) 구원의 문에 들어가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단죄의 심판을 내리시고 나면 더 이상의 구원이 없습니다. 꼴찌들 가운데서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첫째들 가운데 거기서 쫓겨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여행을 하시는 동안, 여러 고을과 마을을 지나며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24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25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26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27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28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가 하느님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만 밖으로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29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30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13:22-30
22 Through towns and villages he went teaching, making his way to Jerusalem. 23 Someone said to him, 'Sir, will there be only a few saved?' He said to them, 24 'Try your hardest to enter by the narrow door, because, I tell you, many will try to enter and will not succeed. 25 'Once the master of the house has got up and locked the door, you may find yourself standing outside knocking on the door, saying, "Lord, open to us," but he will answer, "I do not know where you come from." 26 Then you will start saying, "We once ate and drank in your company; you taught in our streets," 27 but he will reply, "I do not know where you come from; away from me, all evil doers!" 28 'Then there will be weeping and grinding of teeth, when you see Abraham and Isaac and Jacob and all the prophets in the kingdom of God, and yourselves thrown out. 29 And people from east and west, from north and south, will come and sit down at the feast in the kingdom of God.30 'Look, there are those now last who will be first, and those now first who will be last.'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완성의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살아있는 것이 기쁜 이유는 우리에게 완성의 날을 준비할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책망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달픈 것은 그 좁은 문을 향하여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9년 08월 25일 일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월성 : 매주 월요일 오후 1-4시, 가톨릭회관 3층 대강의실, 오후 7-9시 205호
화성 : 매주 화요일 오전 10-12시, 성산2동 성당 요한강당
https://youtu
.be/0KB8yY_hs60
Tárrega: Gran Vals - Anika Hutschreuther, Guitar
구원과 멸망
+ 루카 13,22-30
1. 예수님의 '좁은 문'은 어떤 문입니까? 이 좁은 문은 구체적으로 내 삶 안에서 어떤 것들을 포기하라고 합니까? 왜 주님은 나보고 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한다고 하십니까?
2. 나는 이기적이거나 자만에 빠져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희생하기 싫어하고 편한 것만 찾지는 않습니까?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내가 어떻게 변화되길 바라고 계십니까?
Today's Reflections:
Sunday 25th, The Twenty-first Sunday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Isaiah 66:18-21 Second reading : Hebrews 12:5-7, 11-13 Holy Gospel : Luke 13:22-30
Risk being shut out
In our first reading for today we see that the Lord is going to gather all of his Chosen People from wherever they have been scattered and return them to Jerusalem. They will come in chariots, on horseback, on stretchers, but they will come to Jerusalem – which was also known as Zion and the City of God – where his glory will be manifest. But with this group will also come Gentiles and they, too, will be welcomed to the House of God. The towns named in the text stretched from the Black Sea to Africa to Spain, demonstrating that the glory of the Lord would be heard of in far off places, and so the people will stream from far and wide to Jerusalem.
In the gospel, the idea of many people trying to enter God’s house together is also found. Jesus was asked about how many people would be saved and, in response, he urged his listeners to do their best to enter heaven. However, he also said that this was not the easiest thing to do for the door is narrow and so not everyone will gain entry. Over the last few Sundays there has been the reminder to be always ready because we don’t know when we will be called to give an account of our lives of faith and this is again echoed in today’s text. Those who will not believe in Jesus Christ or in his message until it is too late will be left out in the cold, whereas the faithful will enter paradise to take their places along with the prophets of old. All of this took place while Jesus was on his final journey to Jerusalem. It is a reminder to us that we must live up to our responsibilities as baptised Christians sooner rather than later, and to take an active part in the spread of the Gospel.
In our second reading from the letter to the Hebrews, the author tells the people that some of them will be punished by the Lord but this should not be a cause of worry for – in punishing them – the Lord acknowledges them as his children. His punishment, therefore, is intended to make of them a better people, and not just better people in terms of how they live in society but people of stronger faith and, therefore, more worthy of heaven. The people are to stand firm and strong because God’s punishment demonstrates his love for them. Of course, we can avoid any punishment by living according to the Gospel precepts, beginning today.
Prayer :
"Lord, help me to always trust in your saving grace, especially when I am tempted and put to the test. Help me to be faithful to you and give me the courage and strength to resist temptation, especially temptation to compromise or to be indifferent to your word." - Amen
성 루도비코(Saint Louis)
축 일 : 08월 25일
신 분 : 왕, 3회원
활동지역 : 프랑스(France)
활동년도 : 1214-1270년
같은이름 :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루도비쿠스(Ludovicus, 또는 루도비코)는 프랑스 왕 루이 8세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아들로 프와시(Poissy)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1226년 그의 부친이 서거했을 때 그의 나이는 12세에 불과 했으므로 어머니가 섭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아들의 왕권을 노리는 샹파뉴(Champagne)의 티보를 비롯하여 야심 많은 귀족들과 대항했고, 어떤 때에는 전쟁도 불사하였다.
그는 1234년 5월에 프로방스의 공작 레이먼드의 딸인 마르가리타(Margarita)와 결혼하여 열 명의 자녀를 두었다. 같은 해에 그는 대권을 물려받고 통치자가 되었고, 모친 블랑쉬는 고문관으로 아들을 도왔다. 그는 1242-1243년의 남 프랑스의 반란을 진압했고, 또 잉글랜드(England)의 헨리 3세를 테임브르그에서 격퇴하였으며, 포와투를 손에 넣는 등 국가의 권력을 점점 확대하였다. 1248년 그는 십자군을 지휘하여 출정하였으나 1249년에 다미에타에서 포로가 되어 사라센인들의 손에서 곤욕을 치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성지로 가서 1254년까지 머물다가 모친의 사망 통보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플랑드르(Flandre)와의 평화를 이룩했고 리모주(Limoges), 카오르(Cahors) 등 수많은 지역을 평정하였다.
루도비쿠스는 천성적으로 신심이 깊었고, 또 실제로 이상적인 수도자를 꿈꾸었다. 이 때문에 그는 정의를 펴고 그리스도교적 사랑으로 나라를 다스렸으며, 왕으로부터 농부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권리를 옹호하여 성왕으로 불리었다. 동시에 그는 예리하고 힘찬 군주였으며, 동시에 평화를 사랑하는 뛰어난 군인이었다. 그는 하느님께 불경한 태도나 말을 한 사실이 없다. 그의 맏아들에게 했던 유언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그대로 설명하고 지키도록 부탁할 정도였다. 1270년 그는 재차 십자군을 일으켰다가 8주일 후에 이질에 걸려 운명하였다.
성인은 한마디로 가장 이상적인 중세의 그리스도인 왕이었다. 그의 치하에서 프랑스는 최대의 번영을 누렸다. 그의 신심은 자신이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됨으로써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의 남자 수호성인이다. 그는 1297년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임종시에 그는 이런 말을 하였다. “주님, 저는 이제 당신의 집에 들어가렵니다.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예배하리이다. 당신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나이다.” 그리고 오후 3시경에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며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생드니(Saint-Denis)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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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9년 08월25일(녹) 연중 제21주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