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월01일(자) 사순 제4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 이사야서 65, 17-21
<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
해설) 이사야 예언자는 새 예루살렘,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예언합니다. 이러한 새 창조에 대한 희망은 오로지 주님께만 의존하고 살아야 한다는 하느님 중심적 가치관의 표현입니다. 진정한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희망입니다. 자신의 엄청난 죄를 깨달았다고 해서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7 “보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리라. 예전의 것들은 이제 기억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으리라. 18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대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움’으로, 그 백성을 ‘기쁨’으로 창조하리라. 19 나는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나의 백성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라. 그 안에서 다시는 우는 소리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리라. 20 거기에는 며칠 살지 못하고 죽는 아기도 없고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으리라. 백 살에 죽는 자를 젊었다 하고 백 살에 못 미친 자를 저주받았다 하리라. 21 그들은 집을 지어 그 안에서 살고 포도밭을 가꾸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 First Reading, Isaiah 65:17-21
Thus says the LORD: 17 Lo, I am about to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things of the past shall not be remembered or come to mind. 18 Instead, there shall always be rejoicing and happiness in what I create; For I create Jerusalem to be a joy and its people to be a delight; 19 I will rejoice in Jerusalem and exult in my people. No longer shall the sound of weeping be heard there, or the sound of crying; 20 No longer shall there be in it an infant who lives but a few days,or an old man who does not round out his full lifetime; He dies a mere youth who reaches but a hundred years, and he who fails of a hundred shall be thought accursed. 21 They shall live in the houses they build, and eat the fruit of the vineyards they plant
묵상) 우리는 희망의 좌절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세에서의 희망이 헛된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우리의 참 희망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희망은 하느님과 그분의 의로움에 있으며, 진정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 나라입니다.
+ 요한 4, 43-54
<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
해설) 갈릴래아의 카나에서 이루신 두 번째 기적은 예수님께서 거의 죽게 된 자를 당신의 말씀만으로, 그것도 먼 거리에서 환자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치유하신 표징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적인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러한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줍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를 43 떠나 갈릴래아로 가셨다. 44 예수님께서는 친히,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신 적이 있다. 45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가시자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분을 맞아들였다. 그들도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님께서 축제 때에 그곳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예수님께서는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적이 있는 갈릴래아 카나로 다시 가셨다. 거기에 왕실 관리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카파르나움에서 앓아누워 있었다. 47 그는 예수님께서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이 죽게 되었으니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시어 아들을 고쳐 주십사고 청하였다. 48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이다.” 49 그래도 그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 51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마주 와서 아이가 살아났다고 말하였다. 52 그래서 그가 종들에게 아이가 나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묻자, “어제 오후 한 시에 열이 떨어졌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53 그 아버지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시어 두 번째 표징을 일으키셨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John 4:43-54
At that time 43 Jesus left for Galilee. 44 For Jesus himself testified that a prophet has no honor in his native place. 45 When he came into Galilee, the Galileans welcomed him, since they had seen all he had done in Jerusalem at the feast; for they themselves had gone to the feast. 46 Then he returned to Cana in Galilee, where he had made the water wine. Now there was a royal official whose son was ill in Capernaum. 47 When he heard that Jesus had arrived in Galilee from Judea, he went to him and asked him to come down and heal his son, who was near death. 48 Jesus said to him, “Unless you people see signs and wonders, you will not believe.” 49 The royal official said to him, “Sir, come down before my child dies.” 50 Jesus said to him, “You may go; your son will live.” The man believed what Jesus said to him and left. 51 While he was on his way back, his slaves met him and told him that his boy would live. 52 He asked them when he began to recover. They told him, “The fever left him yesterday, about one in the afternoon.” 53 The father realized that just at that time Jesus had said to him, “Your son will live,” and he and his whole household came to believe. 54 Now this was the second sign Jesus did when he came to Galilee from Judea.
묵상) 기적에 의존하는 믿음은 말씀을 믿는 믿음에 비해서 낮은 단계의 믿음입니다. 외적으로 보여 지는 신기한 일이나 기적은 믿음의 동기가 될 수 없고,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만이 믿음의 참된 동기가 될 것입니다. 카나의 왕실 관리는 예수님의 말씀만을 믿고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차원 높은 단계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카나에서 일어난 첫 번째 표징은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자 물이 포도주로 변한 기적 사건입니다. 카나에서 두 번째 표징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자 멀리 있던 왕실 관리의 아들이 살아나게 된 기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을 통하여 예수님의 능력은 크게 드러납니다.
2019년 04월 01일 월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I will always be with you [ Love is / Puuung]
왕실관리의 아들을 살리시다
+ 요한 4, 43-54
1. 왕실관리눈 어떤 마음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습니까? 그는 지체가 높은 사람으로 힘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할 수 없는 그의 한계는 무엇이었습니까? 무엇이 죽어가던 그의 아들을 살려냈습니까?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은 어떻게 변화됩니까?
2. 나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나는 기도 속에서 주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의탁보다는 믿음에 대한 대가로 표징을 요구하거나 조건을 걸지는 않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표징보다 나의 능력이나 재물을 더 신뢰하지 않습니까? 삶 속에서 시련이 올 때마다 자주 넘어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 생각합니까? 나는 언제 주님을 찾습니까? 기쁘고 감사할 때입니까? 아니면 슬프거나 고통 받을 때 입니까?
Today’s Reflection :
Monday of the Fourth Week of Lent
First Reading : Isaiah 65:17-21
Holy Gospel : John 4:43-54
Jesus heals son of official at Capernaum
God tells us through the Prophet Isaiah that he will establish his kingdom on earth and it will be one of happiness because he will be with us. In the text we have God tells us that those blessings will mean that the sound of weeping will no longer be heard and that infants would no longer die after a few days.
In the text from St John’s gospel we see Jesus fulfilling the text from Isaiah as he cures the son of a court official which also removes the mourning veil from over the official’s house. The official had wanted Jesus to come to the house and cure the boy but Jesus would not go, preferring instead to tell the man his son was saved. The man believed and went on his way. We are asked to have faith in Christ as this official did and to live according to his ways. If we do so, then we will inherit the kingdom God spoke of in the first reading. Christ’s message is not just for the Jews or the poor, but for all people be they rich or poor, powerful or powerless.
Prayer :
"Lord Jesus, your love never fails and your mercy is unceasing. Give me the courage to surrender my stubborn pride, fear and doubts to your surpassing love, wisdom and knowledge. Make be strong in faith, persevering in hope, and constant in love." - Amen.
성 로도비코 파보니 (Saint Lodovico Pavoni)
축 일 : 04월 01일
신 분 : 신부, 설립자
활동지역 : 다수의 지역
활동년도 : 1784-1849년
같은이름 : 누수, 로도비꼬, 로도비꾸스, 로도비쿠스,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로도비코 파보니는 1784년 9월 11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활기 넘치고 총명한 아이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재빨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된 도미니코회의 카를로 도메니코 페라리(Carlo Domenico Ferrari) 신부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집에서 공부했던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Napoleon I)가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시기(1799-1814년)에 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07년 브레시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818년, 그는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설립할 허락을 받고 성 바르나바(Barnabas)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면서부터 불행한 소년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1821년 ‘성 바르나바 학교’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첫 번째 사업으로 인쇄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1823년에 ‘성 바르나바 학교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는 오늘날의 ‘안코라 출판사’(Ancora Press)의 전신이 되었다. 소년들은 또한 목수, 은세공인, 대장장이, 제화공, 염료 제조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에 그는 처음으로 농아들을 학교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장을 구입하여 농업학교도 설립하였다.
1825년,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자신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었고,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는 브레시아를 위해 이를 승인해 주었다. 1847년 8월 11일, 브레시아 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 루치(Luchi) 몬시뇰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또는 ‘파보니아니’(Pavoniani)]를 설립했고, 그해 12월 8일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되었다.
1849년 3월 24일, 브레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저항했던 ‘열흘’ 동안, 양측은 모두 브레시아를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콜레라마저 유행하는 동안 시민들을 돌볼 책임을 느낀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12km 떨어진 사이아노(Saiano) 언덕에 있는 수련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소년들을 이끌며 그의 마지막 영웅적인 애덕의 행위를 완수했다. 한 주일 뒤인 1849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 밝아오던 새벽녘에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30여 년간 교육의 긍정적 방법으로 거리의 소년들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영감을 쏟아 부었던 그의 생이 마감된 것이다.
교육에 대한 그의 이상은 광범위한 것으로 한 인간의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훌륭한 사회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노동헌장’이 반포되기 50년 전에 이미 그는 사회정의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 스스로 고용인들을 올바로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후대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처럼 격려하고 예방하는 교육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엄격함보다 관대함을 선호했다. 그래서 종종 “엄격주의는 하늘나라를 텅 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회원들은 현재 브라질, 콜롬비아, 에리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출판하는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 밖에서 안코라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2002년 4월 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16년 10월 1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루도비쿠스 파보니(Ludovicus Pavoni)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9년 04월01일(자) 사순 제4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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