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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09일


02월 09일(녹) 연중 제4주간 토요일

Saturday of the Fourth Week in Ordinary Time



+ 히브리서 15-17.20-21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 다.>

해설) 주님의 예언자들은 형식적이고 물질적인 제사를 배격하고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강조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어린 양의 피를 바치는 것이지만, 신약의 제사는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선행과 나눔 등 거룩한 삶의 열매를 바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제사는 선행과 나눔과 봉사의 삶입니다.


형제 여러분, 15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16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17 지도자들 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20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 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21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 1st Reading, Hebrews 13:15-17.20-21

15 Through him then let us continually offer God a sacrifice of praise, that is, the fruit of lips that confess his name. 16 Do not neglect to do good and to share what you have; God is pleased by sacrifices of that kind. 17 Obey your leaders and defer to them, for they keep watch over you and will have to give an account, that they may fulfill their task with joy and not with sorrow, for that would be of no advantage to you. 20 May the God of peace, who brought up from the dead the great shepherd of the sheep by the blood of the eternal covenant, Jesus our Lord, 21 furnish you with all that is good, that you may do his will. May he carry out in you what is pleasing to him through Jesus Christ, to whom be glory forever and ever. Amen.



묵상)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은총으로 마음과 영혼이 튼튼하게 됩니다. 참 구원에 이르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통을 함께 겪고 이 세상에 대한 무질서한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 나누고 섬기고 희생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주님께 참된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 마르코 6,30-34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해설) 예수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가서 당신 제자들과 함께 쉬시려고 하지만 구원과 은총을 바라는 사람들은 계속 예수님을 찾아다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행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위력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풍요로워지고, 그분의 행적으로 많은 은총을 받습니다.


그때에 30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31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 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34 예수님께서는 배에 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rk 6:30-34

30 The apostles gathered together with Jesus and reported all they had done and taught. 31 He said to them, “Come away by yourselves to a deserted place and rest a while.” People were coming and going in great numbers, and they had no opportunity even to eat. 32 So they went off in the boat by themselves to a deserted place. 33 People saw them leaving and many came to know about it. They hastened there on foot from all the towns and arrived at the place before them. 34 When he disembarked and saw the vast crowd, his heart was moved with pity for them, for they were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and he began to teach them many things.



묵상) 구약 시대에 모세가 시나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입니다. 신약의 예수님께서는 외딴 광야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인 잔치가 종말론적 잔치라면 예수님은 진정 종말론적 인물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를 고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을 보고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외딴 곳으로 가서 쉬게 합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일을 한 후에는 반드시 예수님 안에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진정 예수님 안에 영적 충만함과 참된 풍요로움이 있습니다.



2019년 02월 09일 토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Make Of Our Hands A Throne - Notre Dame Choir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

+ 마르코 6,30-34



1.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들을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은 무엇 이었습니까? 예수님과 제자들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는 무엇이고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나 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습니까?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 내가 한 일과 나의 생각, 느낌들을 어떻게 정리해서 예수님께 보고합니까?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열심히 했으니 좀 쉬라고 하실까요?


2. 군중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탄 배가 떠나자 배를 쫒아 달려갔습니까? 그들이 얻고 싶거나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왜 그들을 보고 안타까워 하셨습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내가 갈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예수님께 어떤 것을 얻고 싶습니까? 이런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을 느껴보십시오.


 


Today’s Reflection


Saturday 9th of the Fourth Week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Hebrews 13:15-17, 20-21

Holy Gospel : Mark 6:30-34


Sheep without shepherd


As we conclude the letter to the Hebrews we are exhorted one last time to live according to the Gospel, obeying the leaders of the Church who are there to guide us towards God.


In the Gospel, the disciples have returned from their preaching and curing and a huge crowd gathers. They go with Jesus to rest but the crowd follows them and Jesus begins to teach them. The readings call on us to live Christian lives but also to play our part in the spread of the Gospel.


Prayer :

"Lord, you guard and protect us from all evil. Help me to stand firm in your word and to trust in your help in all circumstances. May I always find rest and refuge in the shelter of your presence." Amen.


 

성 미카엘 페브레스 코르데로 (Saint Michael Febres Cordero)

축 일 : 2월 9일

신 분 : 교육자

활동지역 : 에콰도르(Ecuador)

활동년도 : 1854-1910년

같은이름 : 마이클, 미가엘, 미겔, 미구엘, 미키


성 미카엘 페브레스 코르데로는 1854년 11월 7일 남아메리카 에콰도르의 쿠엥카(Cuenca)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에서 싸운 유명한 레온 페브레스 코르데로(Leon Febres Cordero) 장군이며, 그의 아버지는 국내 정치 사안에 영향을 끼치던 프란치스코 페브레스 코르데로 몬토야(Francisco Febres Cordero Montoya)였다. 아버지 프란치스코는 매력 있는 교양인이었으며 5개 국어에 능통했다. 성인이 태어날 즈음에는 쿠엥카의 신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다. 의심할 필요 없이 성 미카엘의 성소는 그의 어머니인 아나 무뇨즈(Ana Munoz)와 신심 깊은 외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의 어머니는 19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에서 5명이 수녀가 되고 1명은 예수회 사제가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학자 성인의 탄생을 위해 완벽한 가족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9살 때 성 미카엘은 1863년 요한 세례자 드 라 살(Joannes Baptista de la Salle, 4월 7일)의 그리스도 교육 수도회가 쿠엥카에 세운 학교의 첫 학생이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 접하게 된 지성의 생활과 수도회의 겸손한 생활양식을 사랑했다. 그래서 후일에 기록하기를 “수도회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언젠가 거룩한 수도복을 입기를 열망하는 마음을 주셨다. 나는 언제나 수사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겼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는 가족 중에서 사제가 나온다면 자랑스러워 했겠지만 평수사가 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반대하였다. 수도생활에로 부르심을 받았으나 부모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성 미카엘은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심하게 앓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어머니는 수사로서 아들의 성소를 인정하였다.


1868년 3월 24일 그는 쿠엥카에서 수도회의 검은 수도복을 입으면서 미카엘이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그 수도회 최초의 방인 성소자로 입회하여 수도복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모교에서 언어(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를 가르쳤으며, 일 년 후 키토(Quito)의 학교로 발령받았다. 그가 부임했을 당시 6년 된 학교에는 250명의 학생이 있었지만 다시 6년 후 학생 수는 천 명을 넘어섰다. 이 시기에 성 미카엘 수사는 자신이 쓴 많은 책 중 첫 번째 책을 출판하였다. 하지만 세속 과목들을 가르치고 집필하는 것은 그의 첫째가는 기쁨은 아니었다. 그의 첫 번째 기쁨은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우 인기 있는 선생님이었다. 성 미카엘 수사는 자신의 가르침을 사도적 성소로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대 사회의 가련한 상태에서 나의 거룩한 구세주께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모든 선에 있어서 나의 절대적 부족함을 생각하지 않으시고 영혼의 승리에로 나를 부르신다. 내가 그분의 음성에 귀를 막을 수 있을까? 나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워할 수 있을까? 사랑과 감사의 이 모범을 거부할 만큼 대담할 수 있을까? 나는 내가 맡는 모든 일들을 사랑의 정신으로 맡아야 하며, 하느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위해 나를 채용하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교육자로서 성 미카엘의 재능은 키토의 학교들의 공식 검열관으로 지정되면서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는 교육과 수도생활 중에 학자로서의 임무를 지속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성 미카엘은 교과서를 쓰고, 교리교재, 시와 그리스도교 영성 작품을 저술하였다. 그는 카스티야(Castilla) 에스파냐어 연구에서 특출한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중 몇 권은 에콰도르의 모든 학교에서 필수 교재가 되었다. 결국 그는 1892년 에콰도르 학술원 회원이 된 후 에스파냐 왕립 학술원, 프랑스 학술원, 베네수엘라 학술원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07년 3월 성 미카엘은 프랑스어로 된 더 많은 교과서와 다른 책들을 번역하기 위하여 유럽으로 가게 되었다. 프랑스 시민사회와 종교의 불안한 기운은 수도회의 작품을 프랑스 외부에서 지속시킬 수 있도록 드 라 살 연구소(De La Salle Institute)의 문서들을 에스파냐어로 번역해야 할 급박한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성 미카엘은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4월) 앓게 되었고, 병이 낫자마자 파리의 세브르 거리에 있는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내 방이 있고, 책이 있으며, 근처에 성당이 있다. 이것이 완벽한 행복이다.”


7월에 그는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벨기에의 브뤼셀 근교에 있는 모원으로 이동하였으며 벨기에의 총회에도 참석하였다. 그는 더 많은 집필을 위해 유럽에 계속 머물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성 미카엘은 번역작업에 몰두하다가 건강에 무리가 와서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 근처의 청원자 숙소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몇 달 동안 에스파냐어를 가르쳤다. 1909년 7월 26일 바르셀로나에서 시민혁명이 시작되어 시민들이 수도원을 공격하고 교회 재산을 파괴하여 모든 수도자들에게 큰 근심이 되었다. 그로 인해 1910년 1월 감기에 걸린 성 미카엘 수사의 몸 상태는 급격히 악화되었고, 결국 1910년 2월 9일 동료 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종하였다. 교사와 학자로서 성 미카엘 수사의 명성은 그의 성덕과 일치했다. 그가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국가에서 그에 대한 대중신심이 생겼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그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현존을 강하게 느끼는 신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성 미카엘의 첫 전기 작성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에콰도르의 형제는 시간이 조금 흐르면 변질되는 외적 아름다움의 은총을 받지는 않았다. 키는 컸지만 그의 자세는 어렸을 때부터 구부정했다. 용모는 어두웠고 여위었으며, 금욕 실천과 지병으로 인한 주름살이 깊은 고랑을 이루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 표정은 그의 영혼과 하느님의 은총의 조명으로 인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평화롭고 친절한 본성에서 나오는 온순함이 흘러넘쳐 반향된 것이다. 그의 매우 가는 입술은 항상 지속적이고 은총 가득한 웃음을 지니고 있었다. 맑고 투명한 눈은 가장 순진한 어린이의 눈빛이었으며, 복음서에서 이야기하는 설명할 수 없는 평화에 기인할 수밖에 없는 고요함과 기쁨으로 인해 반짝거렸다. 그의 생김새에서 흘러나오는 고요한 표현은 조용하고 침착한 정신이 그 밑에 흐르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성 미카엘의 유해는 1936년 스페인 내전 중에 에콰도르로 돌아오게 되었으며 1937년 2월 5일 에콰도르에 도착했을 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짧은 시간 안에 키토에 있는 그의 묘소는 성지순례의 중심이 되었다. 정부는 그를 기리기 위해 기념우표를 발행하였고, 탄생 100주년을 맞아 공공 공원에 기념물을 세웠다. 1955년 6월 4일 3만 명의 학생이 참여한 거대한 행진 후에 동과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이 그에게 헌정되었다. 성 미카엘은 1977년 10월 30일 동료 수사 성 무키아누스 마리아(Mucianus Maria Wiaux, 1월 30일)와 함께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10월 2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콰도르 최초의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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