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01월22일

01/21/2019

01월22일(녹) 연중 제2주간 화요일

Tuesday of the Second Week in Ordinary Time

 

 

 

 

+ 히브리서 6,10-20

< 희망은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합니다. >


해설)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당신보다 더 위대한 분이 없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참고 기다려서 결국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처럼 믿음과 인내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 First Reading, Hebrews 6:10-20

Brothers and sisters: 10 God is not unjust so as to overlook your work and the love you have demonstrated for his name by having served and continuing to serve the holy ones. 11 We earnestly desire each of you to demonstrate the same eagerness for the fulfillment of hope until the end, 12 so that you may not become sluggish, but imitators of those who, through faith and patience, are inheriting the promises. 13 When God made the promise to Abraham, since he had no one greater by whom to swear, he swore by himself, 14 and said, I will indeed bless you and multiply you. 15 And so, after patient waiting, Abraham obtained the promise. 16 Now, men swear by someone greater than themselves; for them an oath serves as a guarantee and puts an end to all argument. 17 So when God wanted to give the heirs of his promise an even clearer demonstration of the immutability of his purpose, he intervened with an oath, 18 so that by two immutable things, in which it was impossible for God to lie, we who have taken refuge might be strongly encouraged to hold fast to the hope that lies before us. 19 This we have as an anchor of the soul, sure and firm, which reaches into the interior behind the veil, 20 where Jesus has entered on our behalf as forerunner, becoming high priest forever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

 

 

묵상) 진실하신 주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므로 주님의 약속과 맹세는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약속하신 당신 계획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당신의 맹세로써 보증하십니다. 주님은 정의로우신 분이시므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약속과 맹세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 마르코 2, 23-28 

<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해설) 안식일에는 여러 가지 노동을 금지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추수 작업입니다. 밀 이삭을 자르는 것은 추수 작업에 해당됩니다. 율법 학자들은 사람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에 한해서만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사람이 굶주릴 때에도 안식일 법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rk 2:23-28

23 As Jesus was passing through a field of grain on the sabbath, his disciples began to make a path while picking the heads of grain. 24 At this the Pharisees said to him, "Look, why are they doing what is unlawful on the sabbath?" 25 He said to them, "Have you never read what David did when he was in need and he and his companions were hungry? 26 How he went into the house of God when Abiathar was high priest and ate the bread of offering that only the priests could lawfully eat, and shared it with his companions?" 27 Then he said to them,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not man for the sabbath. 28 That is why the Son of Man is lord even of the sabbath."

 

 

묵상) 안식일은 주님 안에서 안식하는 날이며 주님을 생각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진정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이 세상의 분주한 일상에서 물러나 주님께 온 정신과 마음을 기울이는 날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만드십니다. 거룩한 안식을 통해 더 큰 힘을 얻게 됩니다. 하루를 마치고 주님 안에서 쉬면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엿새를 일하고 주님 안에서 하루를 쉬면 일주일을 살아갈 새 에너지를 얻습니다. 주님 안에서 쉬고 머무는 시간을 자주 가질수록 우리는 영적으로 진보하게 될 것입니다​.

 

 

2019년 01월 22일 화요일

서울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Silvina Moreno - "De Donde Vengo"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 마르코 2, 23-28

  

1.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율법이 금지한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행동들을 했습니까?율법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율법을 지키며 사는 바리사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바꿔놓은 율법을 어떻게 새로이 바꾸고 계십니까?

 

2. 진정한 의미의 안식일이란 어떤 것이며 하느님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고 새로워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식일은 내게 어떤 의미이며 나는 이 안식일을 어떻게 지냅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며 시간을 보냅니까? 아니면 한 주간 동안 주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혹시라도 잘못된 것은 없었는지 성찰하고 묵상 속에서 하느님 안에 머무는 시간을 갖습니까?

 

 

 

 

Today’s Reflection :

 

Tuesday 22nd of the Second Week in Ordinary Time

First Reading : Hebrews 6:10-20

Holy Gospel  :  Mark 2:23-28

 

Lord of the sabbath

 

All that we do is remembered by God and never forgotten. The letter to the Hebrews uses the example of Abraham to show us that all that God promises will be fulfilled. God has promised us everlasting life and that promise will be fulfilled in the same way that Abraham became the father of a great nation.

 

The Pharisees are unhappy with Jesus and his followers in today’s Gospel text because, unlike the Pharisees, they do not keep the Sabbath in the same way as the Pharisees do. The Pharisees and many others had an extremely strict ban on doing any sort of work on the Sabbath and picking corn was against the Law. Jesus tells them that the Sabbath was made for man and not the other way around. In other words, the Sabbath is a day for remembering the goodness of God and giving thanks to him and while it does mean not working on the Sabbath day it does not mean that all physical exertion is banned.

 

 

Prayer :

"Lord, may I give you fitting honor in the way I live my life and in the way I treat my neighbor. May I honor the Lord's Day as a day holy to you. And may I always treat others with the same mercy and kindness which you have shown to me. Free me from a critical and intolerant spirit that I may always seek the good of my neighbor."  Amen.  

 

 

 

성 아나스타시오 (Saint Anastasius)

 

 

축       일  :   01월 22일

신       분  :   수도승, 순교자

활동지역  :   페르시아(Persia)

활동년도  :   +628년

같은이름  :   아나스따시오, 아나스따시우스, 아나스타시우스

 

 

  그리스어로 된 성 아나스타시우스(또는 아나스타시오) 수난기에 따르면, 그는 페르시아의 레이(Ray, 오늘날 이란의 테헤란에 포함된 고대도시)에서 태어나 마군닷(Magundat)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후에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호스로 2세(Khosrau II, 590-628 재위) 왕의 군대에서 기병이 되어 614년 예루살렘 정복 전쟁에 참여했다. 호스로 2세는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성 십자가(True Cross)를 빼앗아 사산왕조의 수도 크테시폰(Ctesiphon)으로 가져갔다. 성 십자가는 호스로 2세 퇴위 후 비잔틴 제국의 헤라클리우스(Heraclius) 황제와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돌려받았다.

 

  이 기회에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었고, 그러한 관심은 조로아스터교를 믿던 그가 신앙의 회심을 체험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모데스투스(Modestus)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하는 아나스타시우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리고 군대를 나와 예루살렘의 성 사바 수도원(Mar Saba)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다. 7년을 수도 생활에 정진한 후 그는 페르시아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카이사레아(Caesarea)로 갈 허락을 받았다.

 

  그는 여기서 동료들에게 그들 종교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복음을 선포하다가 체포되어 중노동 형을 받았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수차례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성 아나스타시우스는 다른 70명의 그리스도인과 함께 유프라테스강 근처로 끌려갔다. 여기서 그는 그리스도교를 포기하면 호스로 2세 왕 곁에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유혹을 거부하고, 목 졸림 당해 죽음에 이른 후 참수당했다. 그의 시신은 개들에게 던져졌지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고, 얼마 후 인근에 있는 성 세르기우스(Sergius) 수도원에 묻혔다. 그 후 그의 유해는 팔레스티나와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최종적으로 로마의 성 빈첸시오(Vincentius)와 성 아나스타시우스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9년 01월22일(녹) 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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