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월16일(녹) 연중 제24주일
Twenty-Fourth Sunday in Ordinary Time
믿음 (Faith)
오늘은 연중 제24주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의 주제는 믿음입니다. 주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알고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에는 믿음에 따른 행동이 뒤따릅니다.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오늘 독서는 이사야서 50장의 말씀으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입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의 말씀만을 믿습니다.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귀를 열어주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도 않고 꽁무니를 빼지도 않습니다. 주님의 종은 때리는 자에게 등을 내어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밉니다. 주님의 종은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사명을 잘 받아들입니다.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믿어주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습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을 믿는 그 참된 믿음으로 모든 고통과 고난을 이겨냅니다.
제2독서는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자기의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그는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믿음만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믿음에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라합도 유다인들을 친절히 맞아 들였다가 다른 길로 떠나보낸 행동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믿음에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복음은 마르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으로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묻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그리스도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고난을 받고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켜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그리스도 신앙고백을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 사람은 사탄의 하수인이 됩니다. 참된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 이사야 50, 5-9ㄴ
<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내맡겼다. >
해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자기의 사명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는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믿어주고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얼굴빛이 변하지 않습니다. 고난 받는 주님의 종은 하느님께서 죄 없음을 알아주시고 진정 옆에 계셔주실 것입니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 First Reading, Isaiah 50:5-9a
5 The Lord GOD opens my ear that I may hear; and I have not rebelled, have not turned back. 6 I gave my back to those who beat me, my cheeks to those who plucked my beard; my face I did not shield from buffets and spitting. 7 The Lord GOD is my help, therefore I am not disgraced; I have set my face like flint, knowing that I shall not be put to shame. 8 He is near who upholds my right; if anyone wishes to oppose me, let us appear together. Who disputes my right? Let that man confront me. 9 See, the Lord GOD is my help; who will prove me wrong?
+ 야고보서 2, 14-18
<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
해설) 말만으로 추위에 떠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없으며, 좋은 말로 굶주린 사람의 배를 채워 주지 못하고, 설움 받는 사람을 위로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들은 실천이 없는 믿음과 같습니다. 실천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허수아비와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 Second Reading, James 2:14-18
14 What good is it, my brothers and sisters, if someone says he has faith but does not have works? Can that faith save him? 15 If a brother or sister has nothing to wear and has no food for the day, 16 and one of you says to them, "Go in peace, keep warm, and eat well, " but you do not give them the necessities of the body, what good is it? 17 So also faith of itself, if it does not have works, is dead. 18 Indeed someone might say, "You have faith and I have works." Demonstrate your faith to me without works, and I will demonstrate my faith to you from my works.
+ 마르코 8, 27-35
<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한다.>
해설) 고난 받는 메시아는 많은 수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켜질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며 하느님의 거룩한 뜻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의 하수인이 됩니다.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Mark 8:27-35
27 Jesus and his disciples set out for the villages of Caesarea Philippi. Along the way he asked his disciples, "Who do people say that I am?" 28 They said in reply, "John the Baptist, others Elijah, still others one of the prophets." 29 And he asked them, "But who do you say that I am?" Peter said to him in reply, "You are the Christ." 30 Then he warned them not to tell anyone about him. 31 He began to teach them that the Son of Man must suffer greatly and be rejected by the elders, the chief priests, and the scribes, and be killed, and rise after three days. 32 He spoke this openly. Then Peter took him aside and began to rebuke him. 33 At this he turned around and, looking at his disciples, rebuked Peter and said, "Get behind me, Satan. You are thinking not as God does, but as human beings do." 34 He summoned the crowd with his disciples and said to them, "Whoever wishes to come after me must deny himself,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35 For whoever wishes to save his life will lose it, but whoever loses his life for my sake and that of the gospel will save it."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뜻은 알지 못했습니다. 종교 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참다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으로 세속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것입니다.
2018년 09월 16일 일요일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02-3789-5425 010-8889-5425
Jesus My Lord, My God, My All - L'Angelus
베드로의 고백, 수난과 부활 예고
+ 마르코 8, 27-35
1.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질문을 제자들에게 하셨습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까? 나는 예수님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2. 예수님은 앞으로 닥쳐올 당신의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또 우리들 각자에게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나 역시 하느님을 위해 산다고 하면서 가끔씩 세속적이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하진 않습니까?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면서 희생하기 싫어하고 계산적이진 않았습니까? 내가 현재 추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나의 삶 전체와 바꿀 수 있는 것입니까?
Today’s Reflection :
Twenty-fourth Sunday in Ordinary Time
1st Reading : Isaiah 50:5-9
2nd Reading : James 2:14-18
Gospel: Mark 8:27-35
Jesus professed as Christ
The first reading comes from the second Song of the Servant from the prophet Isaiah and is usually associated with Jesus Christ. In the passage we read of one who does the work of God – who is God’s servant – but who is maltreated for it. Yet, the servant doesn’t yield or give in for he knows that God is with him and so he will be triumphant in his trials.
In our gospel text from St Mark we see Jesus questioning the disciples as to who the people think he is. Various answers are given but none are correct. When the disciples are asked for their thoughts, St Peter speaks for the group and makes his great profession of faith and says that Jesus is the Christ, that is the Anointed One of God. This is closely followed by Jesus telling the disciples what it means to be the Christ: it means betrayal, death and resurrection. Peter fails to understand this and tries to prevent Jesus going to his death, and for this he is rebuked because he was, albeit through a lack of understanding, preventing Jesus from carrying out his salvific mission. The Lord then says that those who follow him must also take up their crosses if they are to be his true disciples. The Christian faith is not without its trials and these too have to be taken on board if we are to attain eternal life in the Kingdom. When we prevent the Kingdom of God from being realised on earth – even if it is simply because we do nothing – then we are no better than Satan who does not want the Kingdom of God to become a reality.
In our second reading, the author again exhorts the people to faith in practice, to an active faith. The text doesn’t suggest that the good works people carry out are better than the faith they have, but that the good works should be the visible manifestation of their faith, of their love for God and others. It is very easy for someone to say that they believe in God, and for that faith to go no further than mere words. A true faith is one which sees the believer going into action because of the faith, which is a living and dynamic faith, a faith which informs all that the Christian does. There are those who are unable to act for a variety of reasons, but the vast majority of people can act and the author is calling on those people to act and live out their faith. For the author, faith without good works is a lifeless or dead faith.
Prayer :
"Lord Jesus, I profess and believe that you are the Christ, the Son of the living God. You are my Lord and my Savior. Make my faith strong and help me to live in the victory of the cross by rejecting sin and by accepting your will." - Amen.
성 치프리아노 (Saint Cyprian)
축 일 : 9월 16일
신 분 : 주교, 교부, 순교자
활동지역 : 카르타고(Carthago)
활동년도 : 200/210?-258년
같은이름 : 치쁘리아노, 치쁘리아누스, 치프리아누스, 치프리안, 키프리아노, 키프리아누스, 키프리안
200-210년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서 유복한 이교 가정에서 내어난 성 타스키우스 카이킬리우스 키프리아누스(Thascius Caecilius Cyprianus, 또는 치프리아노)는 수사학자이자 법률가였고 또 교사였다. 그는 246년경 속세의 불의와 부패에 회의와 실망을 느끼던 중 하느님의 은총으로 노사제인 코일리키우스(Coelicius)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는 즉시 당대의 저명한 성서학자이자 유명한 저술가가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후 그는 사제품을 받았고, 249년 초에 카르타고의 주교로 축성되었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249년에 일어난 데키우스(Deci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피신하였으나, 은밀히 피신처에서 편지 등을 보내는 방법으로 자기 교구를 계속 지도하였다. 그러나 그의 피신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계속되어 251년에 교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많은 교구민들이 박해 동안에 배교하였고, 또 자신의 주교 선임을 반대하던 사제 노바티아누스(Novatianus)가 이단에 빠져 있음을 알았다. 노바티아누스 신부는 배교한 신자들에게 아무런 회개 행위도 요구하지 않고 교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지나친 관대함을 나무라고, 박해 당시 배교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규율이 준수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죽을 위험에 처한 배교자를 제외하고는 새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배교자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유보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251년 3월 교황으로 선출된 성 코르넬리우스(Cornelius, 9월 16일)가 배교자들에게 관용과 용서를 베풀자, 노바티아누스는 지금까지의 입장을 바꾸어 배교자들은 영원히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는 배타적인 엄격주의자로 돌변하였다. 로마(Roma)의 주교로 선출될 것을 기대했던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대립교황으로 등장하며 이교적인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즈음에 성 키프리아누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인 "가톨릭 교회 일치"(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와 "배교자들에 관하여"(De lapsis)를 저술, 배포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오류에 빠지지 않고 교회 안에 일치를 이루도록 촉구하였다.
배교자 문제가 해결된 지 얼아 안 되는 252-254년 사이에 아프리카 지역에 몸서리치는 흑사병이 창궐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이를 물리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를 반대하는 이들과 신자들은 흑사병을 그리스도교와 성 키프리아누스의 탓으로 돌리고 비난하며 박해의 빌미로 삼았다. 즉 그리스도교 신자들 때문에 하늘이 분노하여 전염병을 내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사람들의 낭설을 반박하고 위로하며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데메트리아누스에게"(Ad Demetrianum)과 "죽음에 대하여"(De mortalitate)라는 책을 썼다.
그 후 얼마 뒤에 그와 아프리카의 다른 주교들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와의 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왜냐하면 교황은 이단자들과 분리주의자들이 베푼 세례도 유효하다고 인정한 반면, 그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255년 성 키프리아누스는 지역 주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카르타고에서 주교회의를 열고 이단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재세례를 요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성 키프리아누스는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고 또 모든 주교와 사제와 부제들이 로마제국의 공식 종교 예식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칙서를 반포하였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다가 체포되었다. 그는 지방 총독인 파테르누스에 의하여 카르타고에서 50마일 거리에 있는 쿠루비스로 유배되었다. 또 다음해에는 모든 주교와 사제 그리고 부제들을 사형에 처하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다. 성 키프리아누스는 새 총독인 갈레리우스 막시무스에게 소환되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끝까지 이교의 신에게 제사 바치기를 거부하여 258년 9월 14일 카르타고 근교에서 참수됨으로써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그는 교회, 사목, 성서, 성사 그리고 배교자 문제에 관하여 박해와 어려운 상황에서도 13편의 저서와 65편의 서간들을 남겼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라틴 문학의 선구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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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_2018년 09월16일(녹) 연중 제2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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