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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04일


10월04 수요일(백) 한가위

Memorial of Saint Francis of Assisi

Korean version of today's words celebrating the Korean Thanksgiving.

영문판 오늘의 말씀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 내용입니다.

오늘의 말씀

오늘은 한가위입니다. 팔월 대보름 한가위는 풍요로운 결실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조상님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느님께서 해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 제사를 드려온 지혜로운 조상들입니다. 한가위를 맞아 먼저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세상을 떠나신 조상님들과 부모님과 친척과 친지들을 기억하며 기도드립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려고 땅을 축복하시고 많은 열매를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땅을 개척하여 우리에게 참 신앙의 유산을 물려준 순교자들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도록 기도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누며 생활 안에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드립니다.


+ 요엘 예언서 2, 22-24. 26ㄱㄴㄷ

<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리라. >

해설) 어려움에 처할 때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 뉘우치고 도움을 청합니다. 당신 백성의 진실한 회개를 보시고 주님께서는 다시 은총과 축복을 내리십니다. 이제 주님은 풍요로운 시대를 약속하시고 당신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 공동체의 존엄성을 되찾아 주심으로써 주 하느님의 명예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마라. 광야의 풀밭이 푸르고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도 풍성한 결실을 내리라. 23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 주었다. 주님은 너희에게 비를 쏟아 준다. 이전처럼 가을비와 봄비를 쏟아 준다. 24 타작마당은 곡식으로 가득하고, 확마다 햇포도주와 햇기름이 넘쳐흐르리라. 26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한 주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리라.




+ 요한묵시록 14, 13-16

<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리라. >


해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추수할 때가 되었습니다. 복음 선포는 심판을 가져옵니다. 종말 심판은 예수님께서 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주님이시고 우리의 왕이시며 심판할 도구를 가지고 계십니다. 추수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갈아놓는 종말 심판입니다. 곡식이 농부의 손에 달려 있듯이 우리의 인생은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나 요한은 13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생 끝에 이제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낫을 대어 수확을 시작하십시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16 그러자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 루카 12, 15-21

<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해설) 어리석은 부자는 열심히 일했으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에 주님께서는 그 어리석은 부자에게 파산 선고를 내리십니다. 주님의 눈에 전혀 부자로 보이지 않은 이 어리석은 부자는 결국 영적으로 파산한 것입니다. 가장 큰 비극은 재산이나 목숨을 잃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잃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15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 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였다. 18 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 19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21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English Version]

+ First Reading : 1 Nehemiah 2:1-81

In the month Nisan of the twentieth year of King Artaxerxes, when the wine was in my charge, I took some and offered it to the king. As I had never before been sad in his presence, 2 the king asked me, "Why do you look sad? If you are not sick, you must be sad at heart." Though I was seized with great fear, 3 I answered the king: "May the king live forever! How could I not look sad when the city where my ancestors are buried lies in ruins, and its gates have been eaten out by fire?" 4 The king asked me, "What is it, then, that you wish?" I prayed to the God of heaven 5 and then answered the king: "If it please the king, and if your servant is deserving of your favor, send me to Judah, to the city of my ancestors' graves, to rebuild it." 6 Then the king, and the queen seated beside him, asked me how long my journey would take and when I would return. I set a date that was acceptable to him, and the king agreed that I might go. 7 I asked the king further: "If it please the king, let letters be given to me for the governors of West-of-Euphrates, that they may afford me safe-conduct until I arrive in Judah; 8 also a letter for Asaph, the keeper of the royal park, that he may give me wood for timbering the gatesof the temple-citadel and for the city wall and the house that I shall occupy." The king granted my requests, for the favoring hand of my God was upon me.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9:57-62

As Jesus and his disciples were proceeding on their journey, someone said to him, "I will follow you wherever you go." 58 Jesus answered him, "Foxes have dens and birds of the sky have nests, but the Son of Man has nowhere to rest his head." 59 And to another he said, "Follow me." But he replied, "Lord, let me go first and bury my father." 60 But he answered him,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But you, go and proclaim the Kingdom of God." 61 And another said, "I will follow you, Lord, but first let me say farewell to my family at home." 62 Jesus answered him, "No one who sets a hand to the plow and looks to what was left behind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

 


주님 안에서 살다 죽은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입니다. 먼저 살다 가신 조상님들의 삶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영원히 주님과 함께 하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가위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주님께서 조상대대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섭리에 대해 감사하며 찬미하는 날입니다.



2017년 10월 04일 수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500 miles" - 山本潤子 (Back to 1960s. A song is from Japan)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 루카 12,15-21


1. '부'는 내게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들이야 굶던지 말던 나만 배부르고 나만 풍요로우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까? 내가 나누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육적 재물만이 내게 진정 평화를 준다고 생각하거나, 영원한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고 모순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2. "하느님 앞에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란 내게 어떤 의미로 들립니까? 그리고 지금 내가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그 안에 영적 재물을 쌓기보다 언제 거두어 가실지도 모를 육적 재물을 쌓고 있진 않습니까?





Today’s Reflection :

Luke 9:57-62

Are you fit and ready to follow the Lord wherever he leads you? With the call the Lord gives the grace to respond and to follow to the end. Why does Jesus issue a challenge with the call? Jesus was utterly honest in telling people what it would cost to follow him. When a would- be disciple approached Jesus and said he was ready to follow, Jesus told him it would require sacrifice -- the sacrifice of certain creaturely comforts. Jesus appealed to this man's heart and told him to detach himself from whatever might hold him back. Spiritual detachment is a necessary step for following the Lord. It frees us to give ourselves without reserve to the Lord and his service. While many of us may not need to give up the comfort of our own home and bed to follow Jesus, we, nonetheless, must be willing to part with anything that might stand in the way of doing God's will. Another would-be disciple said he would follow as soon as he had buried his father. What he meant by this expression was that he felt the need to return to his home to take care of his father through old age until he died. The third had no obligation to return home, but simply wanted to go back and say good- bye. Jesus surprised these would-be disciples with the stark truth that nothing should hinder us from following the Lord. Was Jesus being harsh and rude to his would-be followers? Not really. We are free to decide whether we will take the path which Jesus offers. But if we choose to go, then the Lord wants us to count the cost and choose for it freely.


What does the story of a plowman have to do with the journey? A plowman who looked back while plowing caused his furrow to be crooked. He had to look straight ahead in order to keep the plow from going off course. Likewise, if we look back on what we have freely left behind to follow the Lord, our path will likely diverge and we'll miss what God has for us. The gospel does not record the response from these three would-be disciples. We are only left with the question which Jesus intends for us as well. Are you ready to take the path Jesus offers? His grace is sufficient and his love is strong. There is nothing greater we can do with our lives than to place them at the service of the Lord and Master of the universe. We cannot out give God in generosity. Jesus promises that those who are willing to part with what is most dear to them for his sake "will receive a hundred times as much and will inherit eternal life" (Matthew 19:29). Is there anything holding you back from pursuing the Lord and his will for you life?



Prayer :

"Take, O Lord, and receive my entire liberty, my memory, my understanding, and my whole will. All that I am and all that I possess you have given me. I surrender it all to you to be disposed of according to your will. Give me only your love and your grace - with these I will be rich enough and will desire nothing more." Amen.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Saint Francis of Assisi)

축 일 : 10월 4일

신 분 : 부제, 설립자

활동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년도 : 1181/1182?-1226년

같은이름 :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Pietro Bernadone)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의 부친이 출타 중인 틈을 이용하여 어머니가 요한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프랑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개명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전투에 참가했지만 1202년에 투옥되었다.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딴사람이 되었다.


그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내 교회를 고쳐라”는 말씀을 들으면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옛 생활을 청산하였다. 그는 버려진 옛 산 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에서 들은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시도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부친과 결별하게 되었고,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가난 부인’을 모시는 통회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고, 3년 후인 1210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가 극도의 가난을 살려는 그와 11명의 동료들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본부는 오늘날 아시시 교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안에 있는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이었다. 이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부터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하였다.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면서 형제들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하였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다.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아니었고 다만 부제였다고 한다.


'성당 속의 성당 포치운클라'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성당 / 2014.2.8 / ©권요셉

1212년에 그는 성녀 클라라(Clara)와 함께 ‘가난한 부인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때 그는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선교에 대한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말레크 알 카멜의 포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결국 사라센 선교가 실패로 끝난 줄 알고 성지를 방문한 뒤에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1217년부터 이 수도회 안에는 새로운 기운이 치솟기 시작하여 조직이 강화되면서 발전의 폭이 커졌다. 관구가 형성되고 잉글랜드(England)를 비롯한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장상직을 사임하였다. 이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중에 몇몇 회원들이 수도회의 규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알고, 우고리노(Ugolino) 추기경의 도움으로 규칙을 확정짓고 승인을 받았다.


1224년 그가 라 베르나 산에서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오상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상은 그의 일생동안 계속되면서 그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 그는 오상으로 인한 고통 중에도 당나귀를 타고 움브리아 지방을 다니며 계속 복음을 전하다가 기력이 쇠하여지고 눈마저 실명되어 갔다.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노래’를 지었다.


병세가 깊어지자 성 프란치스코는 포르치운쿨라로 숙소를 옮겼다. 미리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죽음의 다가온 것을 알자 그는 알몸으로 자신을 잿더미 위에 눕혀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수사들에게 요한 복음서의 수난기를 읽게 한 후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1226년 10월 3일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유해는 다음날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2년 후인 1228년 7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230년 5월 25일 그의 유해는 엘리아가 그를 기념하여 지은 프란치스코 대성전의 지하 묘지로 이장되었다.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 2014.2.8 / ©권요셉


지금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공경은 세계 도처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가 세운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다른 재속회원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의 성덕을 본받고 가난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아시시의 가난뱅이 프란치스코 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시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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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7년 10월04 수요일(백) 한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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