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0일(녹)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Memorial of Saints Andrew Kim Tae-gŏn, Priest, and Paul Chŏng Ha-sang, and Companions, Martyrs (이동)
+ 1티모테오 3, 14-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
해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교회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집입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항상 당신의 집인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 계시며 끊임없이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14 나는 그대에게 곧 갈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이 글을 씁니다. 15 내가 늦어지게 될 경우, 그대가 하느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 16 우리 신앙의 신비는 참으로 위대합니다. 그분께서는 사람으로 나타나시고, 그 옳으심이 성령으로 입증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당신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시어,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분께서는 영광 속으로 올라가셨습니다.
+ First Reading, 1 Timothy 3:14-16
Beloved: 14 I am writing you, although I hope to visit you soon. 15 But if I should be delayed, you should know how to behave in the household of God, which is the Church of the living God, the pillar and foundation of truth. 16 Undeniably great is the mystery of devotion, Who was manifested in the flesh, vindicated in the spirit, seen by angels, proclaimed to the Gentiles, believed in throughout the world, taken up in glory.
묵상)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항상 당신의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참된 이치를 알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모범적인 생활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해야 합니다.
+ 루카 7, 31-35
<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
해설) 아이들이 피리를 불며 혼인잔치 놀이를 하자고 해도 다른 아이들이 응하지 않았고, 곡을 하면서 장례식 놀이를 하자고 해도 응하지 않습니다. 어떤 놀이에도 흥미를 잃은 아이들처럼 유다인들은 세례자에게도 예수님에게도 흥미가 없습니다. 요한이 회개를 외치니까 미쳤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어울리니까 세속적이라고 비방합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31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32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33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4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35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Luke 7:31-35
Jesus said to the crowds: 31 "To what shall I compare the people of this generation? What are they like? 32 They are like children who sit in the marketplace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weep.' 33 For John the Baptist came neither eating food nor drinking wine, and you said, 'He is possessed by a demon.' 34 The Son of Man came eating and drinking and you said, 'Look, he is a glutton and a drunkard, a friend of tax collectors and sinners.' 35 But wisdom is vindicated by all her children."
묵상) 아이들이 피리를 불거나 곡을 하면서 상대편 아이들에게 놀자고 해도 그들은 고집을 부리며 서 있기만 합니다. 장터의 아이들처럼 유다인들이 주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은 이기심과 교만 때문입니다. 회개는 하느님을 등지고 있던 사람이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섬기는 법을 가르쳐주시며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자와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을 따라야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과 세상을 향한 집착이 크면 주님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말뿐 아니라 생각까지 침묵한다면 주님의 뜻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2017년 09월 20일 수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Notre Dame Choir - Perfect Praise
세례자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다
+ 루카 7, 31-35
1. 바리사이들은 그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경외하는) 마음이 없었고, 영적 귀머거리에 벙어리였기에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기쁜 구원의 소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말씀처럼 나 또한 완고해진 마음으로 영적 귀머거리로 살고 있지 않은지 묵상해봅시다. 혹시 나의 마음이 살면서 나도 모르게 세속적이 되어버렸거나 편견과 이기심과 교만 때문에 영적 성장에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2. 나는 다른 사람의 의견이 나의 생각과 맞지 않을 때 생각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넓게 이해하려하기보다, 속 좁은 어린아이들처럼 나의 주장을 더 키우고 공격적이 되진 않습니까? 나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자주 일을 그르친 적은 없습니까?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이해하며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있습니까?
Today’s Reflection :
1 Timothy 3:14-16 / Luke 7:31-35
St Paul in his first letter to St Timothy reminds his co-worker that the mysteries of our religion are very deep. He offers no explanation because none could do justice to God but he does give a very brief summary of the mystery. The letter also shows Paul’s concern for Timothy himself who is now looking after the Church in Ephesus where Paul himself had spent time.
In the Gospel we see Jesus teaching the people. He puts it to them that when John the Baptist appeared and didn’t act as they would expect they called him a mad man. Yet when Christ himself appeared among them doing what they expected John to do, they likewise would not accept him but called him a drunkard. Christ is pointing out that the people do not decide what the messenger should be like. The messenger is appointed by God and acts on his behalf proclaiming the message as God has instructed. It is for the people to recognise the messenger and to listen to and accept the message if they are to attain eternal life. We must never see God and his message in our terms.
Prayer :
Lord, give me wisdom. Help me to know what you are calling me to do for You today. Help me to live out my vocation to the best of my ability and not let myself drown in worry about the mission you have for others. Thank you so much for the peace and rest that Your Wisdom brings. Amen.
성 다블뤼 안토니오 (Saint Daveluy Anthony)
축 일 : 9월 20일
신 분 : 주교, 순교자
활동지역 : 한국(Korea)
활동년도 : 1818-1866년
같은이름 : 안돈이,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오,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마리 니콜라 앙토안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 주교의 세례명은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이고, 한국명은 안돈이(安敦伊)이다. 그는 1818년 3월 16일 프랑스 아미앵(Amiens)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그 당시 프랑스의 전통적인 가정답게 모범적인 신앙생활과 덕행의 꽃을 피웠던 집안이다. 부모는 그의 억세고도 침착하지 못한 성격을 고치려고 다소 완고한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는 사제직에 뜻을 두고 1834년 10월 파리(Paris) 교외의 잇시(Issy) 신학교에서 입학하여 2년 동안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어 1836년 10월 파리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에 진학하여 5년 동안 신학을 배운 다음 1841년 12월 18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 서품 후 르와예(Roye) 본당의 보좌신부로 20개월 동안 사목하다가 오래 전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전교신부로서의 뜻을 펼치기 위해 1843년 10월 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다음해에 극동 선교사로 임명되어, 2월 20일 브레스트(Brest) 항구를 출발하여 8월 24일 외방전교회의 마카오 대표부에 도착하였다. 그때 마침 제3대 조선 교구장에 임명되어 조선으로의 입국을 시도하고 있던 페레올(Ferreol, 高) 주교의 권유를 받아들여 조선 선교사를 지원하였다. 그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1845년 8월 초 상해로 가서 8월 17일 금가항(金家巷) 성당에서 거행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한 후, 8월 24일 상해에서 30리 떨어진 횡당(橫塘) 소신학교에서 첫 미사를 집전한 김대건 신부를 보좌하였다. 그리고 8월 31일 페레올 주교, 김대건 신부와 함께 상해를 출발하여 어려운 항해 끝에 10월 12일 저녁 8시경 충남 강경 부근 황산포(黃山浦)에 상륙하였다.
이때부터 1866년 3월에 순교하기까지 21년 동안 그는 당시 가장 오랫동안 조선에서 활동한 선교사가 되었으며, 아울러 조선의 언어와 풍습에도 능통하게 되었다. 조선에 입국한 이듬해인 1846년부터 전교활동을 시작한 그는 갖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7백여 명의 교우들을 돌보았고,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자 일단 활동을 중단하고 습기가 심한 불결한 방에 숨어 살았으며, 그러면서 건강이 많이 악화되었다. 1848년 박해가 뜸해지자 건강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전교활동을 시작하여 1850년에는 생명이 위험한 지경까지 갔다. 이에 페레올 주교는 다블뤼 신부로 하여금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전교활동을 금하였고, 그래서 그동안 다블뤼 신부는 신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하고 틈틈이 “나선소사전”(羅鮮小辭典)을 편찬하는 등 교우들이 손쉽게 볼 수 있는 신심서 및 교리서를 번역 저술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성교 요리 문답”(聖敎要理問答), “천주 성교 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 등의 번역서라든가, “신명초행”(神命初行), “회죄직지”(悔罪直指), “영세대의”(領洗大義), “성찰기략”(省察記略) 등의 저서들은 모두 그의 노력에 의한 것들이다. 특히 한국 천주교회사와 순교사의 정리는 그의 두드러진 업적들 중의 하나이다. 조선 교회사 편찬을 위해 조선사에 관한 비망기와 조선 순교사에 대한 비망기를 저술하여 모두 1862년 파리(Paris)로 보냄으로써 후대의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이것을 기초로 달레 신부가 “한국 천주교회사”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그는 1861년에는 경상도 지방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1865년부터는 내포 지방에서 전교활동을 시작했었는데, 1866년에 병인박해가 더욱 가혹해져 마침내 같은 해 2월 23일에 베르뇌(Berneux, 張敬一) 주교가 잡혀 3월 7일 참수 치명하였다. 그래서 보좌주교였던 그가 주교직을 계승하여 제5대 조선 교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곧 체포되어 당시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고 있던 위앵(Huin, 閔) 신부와 오메트르(Aumaitre, 吳)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 서울 의금부에 갇힌 다블뤼 주교는 심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천주교에 대한 훌륭한 호교론을 펴기고 했다. 그러나 3월 23일 그가 사형에 처해질 것이 결정되어 충청도 보령(保寧) 수영(水營)으로 이송되었다. 그들은 죄수복을 입고 고문으로 상한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이송되는 도중, 처형 예정 날짜인 3월 30일 성 금요일에서 처형일이 다소 연기될 기미가 있음을 알고 “성 금요일에 죽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그의 소원대로 3월 30일에 성 금요일에 다블뤼 주교는 사형을 받게 되었다. 처형이 시작되자 맨 먼저 다블뤼 주교가 칼을 받았다. 이때 희광이들이 다블뤼 주교의 목을 칼로 한 번 내리친 다음 그대로 버려둔 채 처형의 품삯을 흥정하기 위해 한참동안 꾸물거리다가, 흥정이 결정되자 다시 다블뤼 주교의 목을 두 번째 내리쳤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시신은 얼마동안 군문효수 되었다가 교우들의 손에 의하여 홍산 땅에 안장되었다. 현재 그의 유해는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지하성당에 모셔져 있다. 그는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홈
매일미사가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후 사용하세요.
매일미사_2017년 9월20일(녹) 연중 제24주간 수요일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