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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Saint Peter Julian Eymard)

축 일 : 8월 2일

신 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지역 : 프랑스

활동 년도 : 1811-1868년

같은 이름 : 베드루스, 에마르, 율리아노, 율리아누스, 줄리앙,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율리아누스 예마르(Petrus Julianus Eymard)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의 라 뮈르 디제르 출신이다. 그의 부친은 칼 장수였으므로 18세 때까지 부친의 일을 거들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이 있으면 라틴어를 배웠기에 1831년에 그르노블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834년 7월 20일에 사제가 된 그는 5년 동안 샤트와 몽테나르 본당 사목자로 일하던 중 마리스타가 되기 위하여 주교의 허락을 청하였다. 1839년 ‘마리아의 작은 형제회’(마리스타 교육 수사회)에 입회하여 수련을 받은 후 그는 벨리 소신학교의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1845년에는 리옹(Lyon) 수도원의 관구장이 되었다.


한번은 그가 주님의 성체 축일에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나의 영혼은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합니다. 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그분의 현존을 전하겠습니다.” 1851년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신부는 노트르담 드 푸르비에르를 순례한 후 ‘성체 사제회’ 설립을 구체화시켰다. 1856년 마리스타 총장의 승인을 받은 그는 12일 동안이나 파리(Paris)의 대주교를 설득하여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1857년 1월 6일 이 위대한 수도회가 빛을 보게 되었다. 1858년 그는 또 ‘성체 시녀회’를 설립하였고, 1895년에 교황청의 승인을 받았다.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Maria Vianney, 8월 4일) 신부도 그를 일컬어 ‘성인’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참으로 위대한 성인이었다. 그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2년 12월 9일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


1811년 프랑스 라뮈르 시에서 태어나, 사제품을 받고 몇 년 동안 사목에 헌신하다가, 마리아회에 들어갔다. 성체 신비를 특별히 공경한 성인은 성체 공경을 지향하는 남녀 수도회를 세웠다. 민족마다 그 상황에 따라 거룩한 성체에 대한 사랑을 지니도록 장려하고자, 여러 가지 적절한 시도를 하였다. 1868년 8월 1일 태어난 도시에서 선종하였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의 글에서

(La Presence reelle, vol. I, Paris, 1950, pp. 270-271 et 307-308)



성체는 생명의 성사입니다


성체는 온 인류의 생명입니다. 성체는 바로 생명의 원리입니다. 모든 이는 어떤 국적이든 언어든 아무런 장애 없이 교회가 거행하는 거룩한 축제에 함께 모일 수 있습니다. 성체는 그들에게 생명의 법, 곧 사랑의 법을 줍니다. 성체 성사는 사랑의 샘입니다. 이러한 이유와 방식으로 성체는 그들을 공동 유대로 묶어 주고 그리스도인의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줍니다. 모두 같은 빵을 먹습니다. 초자연적으로 서로 화목한 형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십시오. 유다인들이 개종하고 이교인들이 세례를 받아, 여러 지역에서 모여 온 많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한마음 한뜻을 이루었다고 전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고 빵을 떼어 나누는 데에 전념하였던 것입니다.

태양이 우리 육신과 지구의 생명인 것처럼, 참으로 성체는 영혼의 생명이며 인간 사회의 생명입니다. 태양이 없으면 땅은 황무지가 됩니다. 태양이 땅을 기름지고 풍요롭게 하며 아름답게 가꿉니다. 태양이 육신에게 생기와 힘과 아름다움을 줍니다. 이 경이로운 일 앞에서 이교인들이 태양을 세상의 신으로 경배하였어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낮의 태양도 진정한 태양, 곧 하느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복종합니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비추시고, 성체를 통하여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생명의 성사를 이루십니다. 그리하여 가족을 이루고 민족을 이루게 하십니다. 참으로 복되고도 복된 신자는 숨겨진 이 보물을 발견하여, 생명의 샘에서 목마름을 풀고, 자주 이 생명의 빵을 먹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가족입니다. 그 가족을 묶어 주는 끈은 성체이신 예수님입니다. 가족의 식탁을 마련해 주는 이는 바로 아버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만찬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성애와 함께 선포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도들을 자식처럼 곧 ‘내 아이들’이라 부르시고, 당신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거룩한 식탁에 앉는 모든 이는 같은 음식을 먹는 아이들입니다. 바오로 성인은 여기에서 그들이 가족을 이루고 같은 몸을 이룬다고 단언합니다. 모든 이가 나누는 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성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존경과 사랑의 법으로 이웃을 섬길 수 있는 힘을 나누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형제들에게 공경하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형제들이 되십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분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룩한 영성체를 통하여 당신을 내어 주십니다.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St. Peter Julian Eymard, 8월 2일)


1811~1868년, 프랑스 출생 및 선종, 마리아회 사제, 성체회 설립.




성인은 ‘성체의 사도’로 불릴 정도로 성체 신심이 지극했습니다. 다섯 살 때는 마을 성당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성체 조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성인 가족들은 성인이 없어진 줄 알고 가슴을 졸이며 성인을 찾아 헤맸습니다. 한참이 지나서야 성당에서 성인을 발견한 가족들은 성인에게 “혼자 여기서 무엇 하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그때 성인은 해맑은 표정으로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었다”고 답했습니다.


성인이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프랑스 사회는 프랑스혁명과 산업혁명의 여파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또한 반성직주의가 팽배하던 때였습니다. 성인의 아버지는 성인이 사제가 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성인은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회에 입회했으나 건강이 좋지 않아 수도회를 나와야 했습니다. 이후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자 성인은 다시 사제의 꿈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 입학해 1834년 그레노블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성인은 본당 사목을 하면서 자신은 물론 신자들의 영적 쇄신에 힘 쏟았습니다. 성인은 영적 쇄신을 위해선 성모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교구장 주교 허락을 받고 마리아회로 입회한 성인은 성모 신심을 깊이 묵상하며 여러 성모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체험한 성모님과 예수님 사랑을 신자들에게 전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워낙 체력이 약해 순례하다 쓰러질 것 같다가도, 신자들 앞에만 서면 힘이 솟곤 했습니다.


성인은 1856년 성체 성혈 대축일에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프랑스 리옹 성 바오로 성당에서 미사 집전 중 성체를 모실 때,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성인 몸 안에 들어옴을 느꼈습니다. 또한 ‘오직 주님과 성체만을 알려라’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후 성인은 성체 신심을 알리는 데 투신했습니다.


마리아회에서 나와 성체 신심을 알리고 성체 영성을 사는 남녀수도회(성체회)를 설립했습니다. 수도회 설립 초장기엔 재정 문제와 사람들과 의견 충돌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은 성체 안에 계신 주님만을 꿋꿋하게 믿으며 모든 어려움을 헤쳐나갔습니다. 수도회 활동을 통해 첫 영성체 교리 강화에 힘썼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알리는 데 적극 나섰습니다. 성체회는 워낙 재정 상황이 열악해 다른 수도회들이 성체회 수도자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잠잘 곳을 내줘야 할 정도였습니다.


성인은 선종하기 3년 전 로마에서 긴 피정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성인은 예수님 사랑에 흠뻑 빠졌고,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했습니다. 성인은 1962년 요한 2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성인이 성체 신심과 영성에 관해 남긴 글은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8월 2일, 박수정 기자]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베드로 율리아노 예마르 사제',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89-390쪽.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베드로 율리아노 에이마르도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367-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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