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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리디아 푸르푸라리아

성녀 리디아 푸르푸라리아(Saint Lydia Purpuraria)

축 일 : 8월 3일

신 분 : 의류상인, 바오로의 제자

활동 지역 : 그리스

활동 년도 : +1세기경

같은 이름 : 리따


소아시아의 아크-히사르(티아디라) 태생인 성녀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였는데, 필립피(Philippi)에서 행한 사도 바오로(Paulus)의 설교에 감복하여 첫 번째 개종자로서 세례를 받아 유럽(그리스) 최초의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들도 영세를 받게 하고, 사도 바오로로 하여금 그녀의 집에 기거하면서 선교활동을 하도록 협력하였다(사도 16,12-15).

[성서의 인물] 필립비 교회의 첫 열매 리디아


사도 바울로는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머물면서 다른 협조자들과 함께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바울로는 바르나바에게 "우리가 이미 주님의 말씀을 전한 도시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교우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살펴봅시다." 하며 전도여행을 제안했다. 바르나바도 쾌히 승낙하며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도 같이 데려가자고 했다. 그러나 바울로는 고개를 저으며 완강히 반대했다. "마르코는 우리들과 함께 일하지 않고 밤필리아에서 떨어져 나갔던 겁쟁이가 아니오. 난 그런 사람을 데리고 갈 수는 없소.


"바르나바는 "옛일이 아니오, 모두다 잊어버리고 시작하는 마음으로 같이 갑시다." 하며 바울로가 마음을 바꾸도록 간청했다.


"난 생각을 바꿀 마음이 전혀 없소."


"이런 무슨 고집이 이렇게 센지 모르겠네…"


결국 바울로와 바르나바는 이 모든 문제로 큰 언쟁을 벌였고 서로 헤어져 떠날 수밖에 없었다. 먼저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배를 타고 떠났다. 그 뒤에 바울로는 실라와 함께 안티오키아로 떠났다.


"선생님,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교우들의 인사를 뒤로 한 채 바울로 일행은 시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모든 교회에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리고 리스트라에서 디모테오를 새로운 제자로 삼고 함께 전도여행을 했다.


어느 날 사도 바울로의 일행은 트로아스에 도착했다. 밤중에 사도 바울로는 기도에 열중해 있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신비로운 영상을 보게 되었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로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르며 간청했다.


"선생님! 부디 마케도니아로 건너오셔서 불쌍한 저희를 도와주세요." 기도를 마친 바울로는 무슨 뜻일까 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이윽고 사도 바울로는 기도 중에 성령께서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것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당시 마케도니아는 로마의 식민지로 네 지방으로 분할되어 있었다. 바울로 사도는 서둘러 실라, 디모테오 등 일행과 함께 마케도니아를 향하는 배에 올랐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트로아스 항구를 바라보며 사도 바울로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성령의 이끄심은 자신의 생각과는 늘 다른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했다.


드디어 사도 바울로 일행은 마케도니아의 필립비에 도착했다. 그들은 우선 숙소를 정해 여행의 피로를 씻을 목적으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별다른 일이 없었다. 자신들을 찾아온 사람도, 해야 할 일도 마땅히 없었다. 사도 바울로는 불안한 마음을 간진한채 열심히 기도를 계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별다른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일행에게 속내를 드러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필립비는 로마의 군사도시였기 때문에 유대인의 회당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안식일이 되어 사도 바울로의 일행은 유대인의 기도처가 있으리라 생각되는 강가에 도착했다. 조용하고 마실 물도 있어 기도와 명상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기도하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사도 바울로는 그전에 자신이 신비로운 영상에서 본 마케도니아 사람을 기억해냈다.


바울로 사도는 이 여인들의 기도가 바로 자신을 먼 이국의 땅까지 부른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기도하고 있는 여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고는 주님의 복음 말씀을 전했다. 그들 중에는 티아디라 출신의 리디아라는 여인이 있었다. 티아디라는 자색 옷감과 자색 염료 생산지로 유명하고 요한 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티아디라 교회가 있는 곳이었다.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였고 하느님을 공경하는 여자였다. 리디아는 바울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사도 바울로로부터 마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기쁨에 넘친 리디아는 바울로의 일행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했다.


"선생님, 저를 주님의 충실한 신도로 여기신다면 부디 제 집에 오셔서 머물러 주십시오." 리디아는 복음을 전해준 사도 바울로 일행에게 자신의 감사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녀는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귀하게 섬길 줄 알았다. 이런 다정다감한 리디아로 인해 필립비 교회는 사도 바울로에게도 아주 특별한 교회가 되었다. 리디아와 그 가족이 첫 열매가 되어 후에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큰 교회를 이루게 된다.


필립비에서 리디아는 사도 바울로 일행을 위해 물심 양면의 협조와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교회가 큰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리디아의 신앙생활이 주위 사람의 모범이 되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도 바울로가 필립비 교회의 리디아를 생각할 때마다 기쁨과 감사와 찬양을 주님께 드렸을 정도였다. 리디아는 필립비 교회의 첫 세례자였을 뿐 아니라 유럽 교회를 위한 주님의 사도였다.


사실, 우리 교회의 발전에도 리디아 같은 인물들의 활동과 봉사가 큰 밑거름이 된 것이 사실이다.

<평화신문, 제653호(2001년 11월 25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성경 속의 여인]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여인 리디아


수완 좋은 여성 사업가로 유럽 첫 공동체 건설 견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사도행전은, 사도 바오로가 동료 실라스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니며 복음을 선포했던 두 번째 선교여행 중에 어느 날 밤 꿈에서 환시를 보고 행선지를 유럽으로 옮기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도한다. 마케도니아는 바오로가 처음으로 유럽에 발을 내딛는 곳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필리피로 간다(사도 16,6-12 참조).


필리피는 당시 그리스의 도시로서 로마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곳이다. 거기에는 몇몇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 에게해의 풍부한 자원들로 말미암아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물물교환에 이끌려 그곳에 정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유다인의 그룹 혹은 공동체는 그리 큰 규모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당시 거기에는 회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오로는 그곳에 관련된 자신의 선교 여행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13절).


그러니까 바오로가 그런 기도처에서 자신의 복음 선포를 경청할 만한 청중들을 찾기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그 강가에서 많은 여자들을 만났고,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13절). 바오로가 그렇게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여자들이 여러모로 하느님을 두려워하였고, 자신들의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 여자들은 유다인 신앙에 아주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유다인의 율법 전체를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인들로 불리어졌을 것이며, 유다교로 온전하게 귀의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자립한 사업가


그렇지만 이 여자들의 그룹은 되도록 규칙적으로 함께 모여 공동으로 기도를 드렸다. 거기에는 리디아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색 염색으로 유명했던 도시 티아티라 출신으로서 자색 옷감 판매 사업가로 소개된다.


리디아는 사회적으로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름은 제대로 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디아라는 그녀의 이름은 출신지명 ‘리디린’(Lydierin)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사는 여자였다. 당시 그리스의 도시에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자수성가한 여성들이 적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우리는 리디아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리디아가 왜 생활터전을 소아시아의 티아티라에서 필리피로 옮겼는지 우리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그녀의 이주는 아마 사업과 관련되었던 것 같다. 그녀는 상당히 지혜롭고 수완이 좋은 사업가였다. 그녀는 자색 옷감 판매를 통하여 제법 많은 재화를 모았고, 그래서 큰 집을 사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녀가 정말 열심히 일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녀가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노력과 재화의 축적으로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인정을 받았었는지 우리는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색 옷 장사는 일반적으로 염색 사업과 깊이 관련되어 있고, 그런 염색 사업은 가죽 사업처럼 지독하게 역한 냄새를 풍기어 주변에 있는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면에서 천대받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강한 믿음과 활동력의 소유자


리디아는 특히 바오로의 복음 선포에 귀 기울였다.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14절). 그러니까 성경은 그녀의 회심이 자신의 노력이나 사도의 공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업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필리피에서 자색 옷감 장사를 하던 리디아는 이제 본격적으로 힘찬 활동을 펴나가기 시작한다. 곧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녀는 행동하기 시작한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는다”(15절). 그녀의 옷 가게 점원들, 그녀의 집안을 돌보던 종들이 그녀와 함께 세례를 받았던 것이다.


리디아는 이제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온전히 속한다는 표시로서 세례를 받았다. 틀림없이 그녀는 특별한 직감력과 함께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로 여성의 가치를 높이 인식하고 또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같은 세례를 동등한 방식으로 받는다는 것에서도 그녀는 여성의 존엄을 인지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유다교 안에서 여성은 하느님의 사제적 백성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합당한 권한이 없다. 여성은 오직 남성의 도구로만 여겨졌고, 오직 할례를 받은 남자들만 사제적 백성으로 인정을 받았다던 것이다.



손님을 후대하는 주인


이렇게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리디아는 신앙의 열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이제 바오로와 그의 동료인 실라스를 집안에 초대하였다. 그녀는 주도권을 분명하게 쥐고 있었다. 이것을 사도행전이 우리에게 전하는 말씀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리디아는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15절).


여기에서 그녀는 아주 의식적으로 분명하게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걱정하거나 외적인 상황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그녀는 사도들의 초대를 강력하게 권고했다. 그 결과 그녀의 집은 가정 교회가 되고, 나아가, 필리피에서 선교의 거점이 된다. 곧 그녀의 집은 넓은 유럽 지역 전체 가운데 첫 번째 공동체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집을 선교의 거점지로 내놓고, 그 집에 항상 새로운 방랑 설교자들이 드나들게 하는 데에는, 손님들을 편안하게 모시는 호의뿐만 아니라 대담한 용기도 필요했다. 왜냐하면 관청을 상대로 하여 나그네들에 대한 책임을 일정 부분 감당해야 하고, 나그네들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일어날 경우 그에 대한 책임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디아는 자신의 믿음에 따른 행동의 결과를 모두 감수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믿었던 것이 아니다.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헌신했다. 이렇게 그녀의 믿음은 공동체를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했고, 싹이 트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겨자씨와 같았다.


사도행전은 얼마 후에 리디아의 이름을 한 번 더 거명한다. 곧 바오로와 실라스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설교를 한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혔다가 석방된 후에 가장 먼저 찾아간 집이 리디아의 집이었다고 사도행전은 전한다. “이렇게 그들은 감옥에서 나와, 리디아의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만나 격려해 주고 떠났다”(사도 16,40). 리디아의 집은 그만큼 선교의 거점지로 많은 신자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는 말이다.


바오로는 나중에 필리피의 공동체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맺는다. 그는 필리피 형제자매들을 “나의 기쁨이요 화관”(필립 4,1)으로 부를 정도였다. 리디아가 바오로에게 기쁨과 자랑스러움을 안겨주는 그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걸음 더 나아가 리디아가 인격적인 면에서나 적극적인 신앙실천의 면에서 하느님 나라의 중요한 협력자였음은 틀림이 없다. 오늘날도 하느님께서는 이런 협력자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신다.


[쌍백합, 제24호, 2009년 봄호]

리디아 푸르푸라리아


리디아 푸르푸라리아(Lydia Purpuraria, 1세기경, 축일 8월 3일)

필리피교회 설립도운 자색 옷감장수


옷감 염색업과 리디아 성인은 관련이 크다. 그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에 탄복해 사도를 도와 필리피교회를 세운 자색 옷감장수로서 티아티라 출신이었는데, 이곳은 요한묵시록의 일곱 교회 중 하나이자 자색 옷감과 자색 염료생산지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었다.


김선태 신부(전주교구)는 2009년 「쌍백합」을 통해 “자색 옷장수는 일반적으로 염색사업과 깊이 관련돼 있고, 그런 염색 사업은 가죽사업처럼 지독하게 역한 냄새를 풍기어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그런 이유로 여러 가지 면에서 천대받는 직업”이라고 전한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리디아 성인은 첫 번째 개종자로서 세례를 받아 유럽(그리스) 최초의 신자가 됐으며, 자색 옷감 염색과 판매를 통해 필리피교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온 집안 식구들까지 세례를 받게 했으며, 사도 바오로로 하여금 자신의 집에 기거하면서 선교활동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하기도 했다.


바오로 사도에게 헌신적 봉사로 보답한 이곳 공동체와 리디아 성인에게 바오로 사도 또한 큰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현재 필리피 폐허 북쪽 2km 지점 지각티스 강변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정교회의 리디아경당이 세워져있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1일, 오혜민 기자]

필리피에서 리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이다(사도 16,11-15)


11 우리는 배를 타고 트로아스를 떠나 사모트라케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아폴리스로 갔다. 12 거기에서 또 필리피로 갔는데, 그곳은 마케도니아 지역에서 첫째가는 도시로 로마 식민시였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13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14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15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4권 - '리디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7년, 2301-23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