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19일

06/18/2017

6월19일(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Monday of the Eleventh Week in Ordinary Time

 

 

 

 

+ 2코린토 6, 1-10

< 우리를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


해설) 참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의 일꾼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내고 매질과 옥살이와 고통도 잘 겪어 냅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진리를 말씀과 정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받거나 언제든지 주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형제 여러분,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2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6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9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10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 First Reading, 2 Corinthians 6:1-10

Brothers and sisters: 1 As your fellow workers, we appeal to you not to receive the grace of God in vain. 2 For he says: In an acceptable time I heard you, and on the day of salvation I helped you. Behold, now is a very acceptable time; behold, now is the day of salvation. 3 We cause no one to stumble in anything, in order that no fault may be found with our ministry; 4 on the contrary, in everything we commend ourselves as ministers of God, through much endurance, in afflictions, hardships, constraints, 5 beatings, imprisonments, riots, labors, vigils, fasts; 6 by purity, knowledge, patience, kindness, in the Holy Spirit, in unfeigned love, 7 in truthful speech, in the power of God; with weapons of righteousness at the right and at the left; 8 through glory and dishonor, insult and praise. We are treated as deceivers and yet are truthful; 9 as unrecognized and yet acknowledged; as dying and behold we live; as chastised and yet not put to death; 10 as sorrowful yet always rejoicing; as poor yet enriching many; as having nothing and yet possessing all things.

 

 

묵상) 참 그리스도인은 언제든지 주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주님의 참된 일꾼들은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어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살아있고,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내적으로 풍요롭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 예수님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 마태오 5, 38-42

<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해설)  예수님께서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태 복수법을 폐기하시고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더 나아가 악한 자에게 맞서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악을 선으로 갚으라 하십니다. 누가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누가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주고, 달라는 사람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 Holy Gospel of the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Matthew 5:38-42

Jesus said to his disciples: 38 "You have heard that it was said,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39 But I say to you, offer no resistance to one who is evil. When someone strikes you on your right cheek, turn the other one to him as well. 40 If anyone wants to go to law with you over your tunic, hand him your cloak as well. 41 Should anyone press you into service for one mile, go with him for two miles. 42 Give to the one who asks of you, and do not turn your back on one who wants to borrow."

 

 

묵상)  '눈에는 눈'이라는 유다교의 동태 복수법은 악한 사람에게 앙갚음하지 말라는 반복수법으로 환원되고, 반복수법은 마침내 '이웃 사랑'으로 환원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른뺨을 맞고도 왼뺨을 돌려대고,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내어 주고, 동행을 원하는 이에게 십리를 같이 가주는 예는 이웃 사랑을 보여 주는 극적인 사례입니다.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신 사람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세상으로부터 기쁨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악한 사람의 모함과 질시에 분노하거나 앙갚음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불쌍히 여길 것입니다. 하느님 때문에 마음이 부자가 되어 넉넉한 사람은 오히려 악인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자비에 그들을 맡길 것입니다.  

 

 

2017년 06월 19일 월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Gesù, T'Adoriamo - Jesus, we Adore You - Canto di Adorazione - Medjugorje

 

 

폭력을 포기하여라.

+ 마태오 5, 38-42

 

  

1.  그리스도인인 내가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만약 나의 원수를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 같습니까? 내가 당한만큼 같은 방법으로 되돌려 주고 싶습니까? 앙갚음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오늘 말씀은 내게 어떤 감정이 들게 합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까?

 

2.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저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잘 따르며 살고 있다면서 실제로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모순된 모습은 없습니까?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나와 반목하는 사람과 화해하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습니까? 미워하는 사람과의 화해를 위한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도움의 은총을 청해보십시오.

  

 

 

 

 

 

 

 Today’s Reflection : Matthew 5:38-42

If someone insults you or tries to take advantage of you, how do you respond? Do you repay in kind? Jesus approached the question of just retribution with a surprising revelation of God's intention for how we should treat others, especially those who mistreat us. When Jesus spoke about God’s law, he did something no one had done before. He gave a new standard based not just on the requirements of justice – giving each their due – but based on the law of love and mercy.

 

In Jesus' teaching on the law he does something quite remarkable and unheard of. He transforms the old law of justice and mercy with grace (favor) and loving-kindness. Jesus also makes clear that there is no room for retaliation. We must not only avoid returning evil for evil, we must also seek the good of those who wish us ill. Do you accept insults, as Jesus did, with no resentment or malice? When you are compelled by others to do more than you think is reasonable, do you resist by claiming your rights, or do you respond with grace and cheerfulness?

 

What makes Christians different from others and what makes Christianity distinct from any other religion? It is grace – treating others not as they deserve but as God wishes them to be treated – with loving-kindness and mercy. God is good to the unjust as well as the just. His love embraces saint and sinner alike. God seeks our highest good and teaches us to seek the greatest good of others, even those who hate and abuse us. Our love for others, even those who are ungrateful and selfish towards us, must be marked by the same kindness and mercy which God has shown to us. It is easier to show kindness and mercy when we can expect to benefit from doing so. How much harder when we can expect nothing in return. Our prayer for those who do us ill both breaks the power of revenge and releases the power of love to do good in the face of evil.

 

How can we possibly love those who cause us harm or ill-will?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He gives power and grace to those who believe and accept the gift of the Holy Spirit. His love conquers all, even our hurts, fears, prejudices and griefs. Only the cross of Jesus Christ can free us from the tyranny of malice, hatred, revenge, and resentment and gives us the courage to return evil with good. Such love and grace has power to heal and to save from destruction. Do you know the power of Christ’s redeeming love and mercy?

 

Personal Question:

Where are you, today, in the journey towards learning to repay good for evil? Still spitting mad and plotting revenge? Ready to lay down your life for the person who destroyed all you love and hold dear? Or somewhere in between?

 

Prayer :

This is a hard teaching, Lord. Your ways are completely different than mine. You ask of me things that seem impossible – are are impossible, without your Grace. Today I am asking you to help me take the next step towards becoming more like you, and loving others, and myself, more like you do. Thank you.   Amen.  

 

 

 

성 데오다토(Saint Deodatus)

 

 

 

 

축       일  :   6월 19일

신       분  :   주교

활동지역  :   느베르(Nevers)

활동년도  :   +679년?

같은이름  :   데오다또, 데오다뚜스, 데오다투스, 디디에르, 디디엘, 디에

 

 

 

고향에서는 디에(Die) 혹은 디디에르(Didier)로 알려져 있는 성 데오다투스(또는 데오다토)는 프랑스 전역에서 널리 공경을 받는 성인이지만 기록상으로는 전무한 상태이다. 그는 655년경에 느베르의 주교가 되었고, 657년에는 성 아만두스(Amandus)와 성 엘리기우스(Eligius), 성 우앙(Ouen),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그리고 성 파로(Faro)와 함께 상스 시노드(Synod of Sens)에 참석하였다. 7년 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그는 스스로 사임하고 보주(Vosges)로 가서 고적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 기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불확실한 것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는 여러 명의 성인들과 유대를 맺었고, 그의 성덕은 매우 빛났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성화를 이기다 못해 이곳을 떠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로 갔으며, 여기서 이미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은수자들과 합류하였다. 성 데오다투스는 곧 그들의 지도자로 뽑혔고, 국왕 킬데릭의 도움으로 성당을 짓기도 하였다. 이 공동체가 점점 커지자 이곳은 에벨샴 수도원이 발전하는 모태가 되었다.

 

자신의 관상생활과 현실적인 직무에 조화를 기하는데 어려움을 느낀 그는 또 그곳을 떠나 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지금의 생디에(Saint-Die)에 정착하자 곧 제자들이 몰려들어 또 다시 수도원을 세워야만 했다. 이때의 규칙은 성 콜룸바누스(Columbanus)의 것을 채택했다. 그는 성인이 되신 히둘푸스(Hidulphus)와 절친한 사이였으며, 서로 방문하고 성사를 집행하는 등 두 성인의 일치를 심화시켰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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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7년 6월19일(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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