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12/23/2016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Saint Paula Elisabetta)

 

 

축         일  :    12월 24일

신         분  :    과부, 설립자, 수녀원장

활동 지역  :   

활동 년도  :    1816-1865년

같은 이름  :    빠올라, 빠울라, 엘리사베따, 엘리사베타, 엘리자베따, 체리올리, 코스탄차, 파올라, 파울라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는 1816년 1월 28일 이탈리아의 손치노(Soncino)에서 귀족 출신의 부모인 프란체스코 체리올리(Francesco Cerioli)와 프란체스카 코르니아니(Francesca Corniani)의 16명의 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나 코스탄차 체리올리(Costanza Cerioli)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병약했기 때문에 11살까지 집에서 머물다가 비로소 베르가모(Bergamo)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코스탄차는 집을 떠난 외로움으로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체험은 그녀가 하느님만을 의지하며 살고 홀로 위안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19살 때 고향인 손치노로 돌아왔을 때 이미 그녀에 대한 결혼 계획이 서 있었다. 아내를 잃고 홀로 된 59세의 가예타노 부세키(Gaetano Busecchi) 백작이 그녀의 남편으로 정해져 있었다. 그녀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알고 제안을 받아들여 1835년 4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19년의 결혼 생활 중 뒷부분은 모든 측면에서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까다로운 성격과 좋지 않은 건강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3명의 자녀가 너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장 큰 위안이었던 카를로(Carlo)마저 16살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1854년 1월 심각한 병으로 죽음을 목전에 둔 카를로는 마지막으로 “어머니, 울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다른 아이들을 주실 거예요.”라는 예언과도 같은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그해가 끝날 무렵인 12월 25일 남편 가예타노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코스탄차에게 있어 암흑기와 같은 이 시기는 그녀에게 심각한 실존적 위기를 초래했다. 그녀의 인생은 무의미하고 무감각해 보였지만 그녀의 아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계속해서 그녀의 영혼을 울렸고, 결국 이는 그녀를 이끄는 빛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영적 지도를 찾았고 자신의 모든 비극과 생애 전체를 하느님의 손길에 내어맡기며 신앙의 힘으로 살기 위한 하느님의 은총을 끊임없이 청하였다. 코스탄차는 카를로에게 했던 것처럼 그녀의 모성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을 계속해서 느꼈다. 결국 38살의 나이에 복음에서 영감을 받은 그녀는 애덕만이 유일하고도 참되며 의미 있는 삶의 길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병든 이들을 찾아 돕고 가난한 이와 고아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나눠주기기 시작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들의 두려움에 젖은 눈은 그녀가 더욱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이끌었다. 그녀는 자신의 재산과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그녀의 집에 고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가문과 이웃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보석까지 팔아 고아원을 위한 물품을 구입하였다. 그녀는 모든 재물을 나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하였다. 즉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기 위해 1856년 12월 15일 영속적인 정결 서원을 했고, 1857년 2월 8일 가난과 순명의 서원을 발했다.

 

곧이어 다른 젊은 여성들이 코스탄차와 함께하기를 소망하여 그녀의 자선사업에 기꺼이 참여하였다. 하느님의 계획은 가려져 있는 듯 보였지만 그녀는 침묵 중에 기도와 명상을 통해 자선 사업을 위한 규칙을 만들게 했다. 그래서 ‘많은 고아들의 어머니’인 코스탄차는 1857년 12월 8일 이탈리아의 코몬테(Comonte)에서 성가정 수녀회를 설립하였고, 바울라 엘리자베타라는 수도명을 선택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의 카리스마는 나자렛 성가정에서 찾을 수 있는 겸손과 단순함, 가난과 사랑을 영성의 기초로 하고, 예수 마리아 요셉이 성가정 안에서 실천한 명상과 은둔 그리고 겸손한 노동으로 충만하여 수녀들 스스로 그러한 삶의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울라 엘리자베타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헌신했고, 남성들을 위해 1863년 11월 4일 빌라캄파냐(Villacampagna)에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성가정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이 두 수도회의 모범으로서 나자렛의 성가정을 제시하고, 수도회의 모든 사업을 성 요셉(Josephus)의 특별한 보호하심에 맡겼으며, 고아들을 ‘성 요셉의 아들과 딸들’로 부르며 보살폈다. 그녀는 부모 없는 아이들의 교육과 가난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그녀의 모성은 끝이 없었고, 수도회의 수사와 수녀들을 주의 깊고 적절하게 양성하는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수도자들의 보살핌에 놓인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 명이라도 방치하거나 잃지 않고 사랑으로써 교육하도록 가르쳤다.

 

성녀 바울라 엘리자베타 원장은 1865년 12월 24일 49살의 나이에 코몬테의 수녀원에서 갑자기 선종하였다. 그녀는 1950년 3월 19일 성 요셉 대축일에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년 5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 강론 중에 고아들에게 참된 가정을 주기 위해 헌신한 그녀의 노력을 치하하며 그녀가 퍼트린 신앙의 가치가 모든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증거자가 되도록 했다고 말씀하셨다.

 

출처: 가톨릭 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파올라 엘리사베타 체리올리 - 많은 고아의 어머니

 

 

파올라 엘리사베타 체리올리(Paola Elisabetta Cerioli, 1816-1865)는 이탈리아 손치노(Soncino)에서 귀족 가문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체리올리(Francesco Cerioli)와 어머니 프란체스카 코르니아니(Francesca Corniani) 사이에서 16남매 중 코스탄차(Costanza)라는 이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심장이 좋지 않아 어려서부터 병약하였으며, 자라서도 내내 심장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워낙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다가 11세가 되었을 때 베르가모(Bergamo)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였다.

 

파올라 엘리사베타가 19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부모가 미리 정해 놓은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손치노로 돌아왔다. 그런데 부모가 정해준 남편 될 사람은 59세의 가에타노 부세키(Gaetano Busecchi)로서, 여 백작이었던 아내를 사별한 홀아비였다. 파올라 엘리사베타는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1835년 4월 30일 부모가 정해준 남편감 가에타노와 결혼하였다.

 

19년 동안 계속된 결혼 생활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밀려오는 수많은 어려움 탓에 편할 날이 없었다. 남편의 까다롭고 맞추기 어려운 성격과 허약한 건강은 파올라 엘리사베타를 몹시 힘들게 하였다. 그녀는 자녀 넷을 낳았지만, 그중 세 아이는 일찍 죽었다. 파올라 엘리사베타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었던 아들 카를로(Carlo)마저 1854년 1월 요절하였는데, 카를로는 죽기 전 이런 말을 하였다. “엄마, 울지 마세요…. 주님께서 엄마에게 다른 아이들을 보내주실 거예요.” 그리고 카를로가 죽던 그해 12월 25일, 남편 가에타노도 죽었다.

 

파올라 엘리사베타는 남편이 죽은 후, 아픈 환자들을 찾아가 도와주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어주었고 고아들을 집으로 맞아들였다. 파올라 엘리사베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 놓기 전 1856년 12월 25일, 정결을 지키면서 살겠다는 종신 서원을 하였다. 그리고 고해 사제의 승인 하에 1857년 2월 8일, 가난과 순명에 대한 서원도 하였다.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뜻을 같이하는 젊은 여성들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회칙을 작성하였고, 1857년 12월 8일 코몬테(Commonte)에서 성가정 수녀회(Sisters of the Holy Family)를 창설하였다.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성가정 수녀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온 생애를 투신하였다. 그리고 1863년 11월 4일에는 빌라캄파냐(Villacampagna)에서 성가정 남자 수도회(Religious of the Holy Family)를 창립하였다. 성 요셉의 특별한 보호에 의탁하는 이 두 수도회는 고아들을 ‘성 요셉의 아들과 딸’로서 받아들이고 그들을 보살피고 양육하는 데에 진력하였다. 1865년 12월 24일, 코몬테에서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49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선종하였다. 1950년 성 요셉 대축일인 3월 19일 교황 비오 12세는 그녀를 복자로 선포하였고, 2004년 5월 1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녀를 시성하였다.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말을 하였다.

 

“나자렛 성가정을 묵상하면서 성녀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신앙의 가치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방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알려주고 공감할 때 그들 사이에 결속력이 유지 · 강화되며, 이를 토대로 가정은 튼튼한 반석 위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쳤습니다. 오늘 새로 성녀가 된 파올라 엘리사베타 수녀는 이러한 가치를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성가정 수도회를 창설하였습니다. 성녀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자립적인 사람으로 자라나려면 가족들이 건강하고 서로 일치해 있으며, 서로가 너그럽게 대하는 안정된 분위기의 가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 가정을 축복해 주시어 이 가정들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든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고 이를 증거하는 가정이 되도록 돌보아주시기를 빕니다.”

 

성녀 파올라 엘리사베타 체리올리의 축일은 12월 24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4년 3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St Paola Elisabetta (Costanza Cerioli) (1816-1865)

 

 

Costanza Cerioli was born on 28 January 1816 in Soncino, Italy, the last of 16 children born into the noble family of Francesco Cerioli and Francesca Corniani. She was a frail child plagued by a heart condition throughout her life.

 

Comfort found in God alone

 

Costanza lived at home until she was 11 years old, when she was sent off to school in Bergamo; here she remained for five years, suffering terribly from the loneliness of being away from home. But this experience helped her grow to depend on God, finding her comfort in him alone. At age 19, Costanza returned to Soncino where a planned marriage awaited her; 59-year-old Gaetano Busecchi, widow of a countess, was set to be her husband. Seeing it as God's will, she accepted this proposal and was married on 30 April 1835.

 

Her marriage lasted 19 years and was marked by suffering on all sides: her husband's difficult character and poor health weighed on her, and three of the four children that Costanza gave birth to died prematurely; Carlo, her greatest "consolation", lived to be 16. Before his death due to serious illness in January 1854, Carlo spoke these prophetic words to his mother: "Mama, do not cry... the Lord will give you other children". At the end of that same year, on 25 December, Gaetano also died.

 

This marked a dark period for Costanza, causing a profound existential crisis. Never had she found herself so alone and abandoned, her life so seemingly senseless. It was during this time that the words spoken by her son became a constant echo in her soul and sustained her, becoming her "guiding light". She sought spiritual direction and entrusted her tragedies and entire life into the hands of God, asking constantly for the grace to live her life with eyes of faith.

 

Spiritual Maternity

 

 Costanza continued to feel the need to express her "maternity" and to "give of herself" to others, as she had done with Carlo. She was now 38 years old and, inspired by the Gospel, understood that charity was the only truly meaningful road. She thus began to visit and assist the sick and share her belongings with the poor and orphans. Looking into the searching and frightened eyes of the orphaned children who begged along the streets inspired her to make even more courageous decisions.

 

She began to give all her wealth and belongings to the poor and opened her home to welcome orphans. Her family and neighbours would remark: "The anguish that this devout woman passed through must have driven her crazy... she does not realize what she is doing".

 

The money she received once she sold her jewellry was used to purchase materials for the orphanage. Even before giving away all her goods, she had made the most important decision: to give her entire self to God, making a perpetual vow of chastity on 25 December 1856. And with her confessor's approval, she made vows of poverty and obedience on 8 February 1857. It was not long before other young women desired to join Costanza and "follow" in her works of charity. God's plan was unfolding before her eyes with greater clarity; in silence, prayer and recollection she began to draw up the Rule for her "work".

 

Sisters of the Holy Family

 

On 8 December 1857, Costanza, "mother of many orphans", founded the Institute of the Sisters of the Holy Family in Comonte, Italy. She took the name "Sr Paola Elisabetta", and summarized the charism of the Congregation in this way:

 

"The humility, simplicity, poverty and love of work found in the Holy Family of Nazareth is what makes up the specific spirituality of this Institute. The Sisters that belong to it must strive to model themselves on this life, full of the recollection, hiddenness and same spirit of humble labour that Jesus, Mary and Joseph lived in this blessed home".

 

From that day, Mother Paola dedicated herself to the growth and development of the religious community. On 4 November 1863, in Villacampagna, a male branch was also founded by her, the Religious of the Holy Family.

 

Under the protection of St Joseph

 

With the House of Nazareth as the model of both branches, Mother Paola entrusted her "work" to the special protection of St Joseph and willed that the orphans under their care be known as the "sons and daughters of St Joseph".

 

She was very attentive to the education of these parentless children and to the problem of poverty. Her motherly spirit was limitless and she understood the importance of carefully and properly forming her religious sons and daughters, so that they would be able to love and educate well the children God placed under their care, these "neglected and lost ones".

 

Mother Paola Elisabetta died unexpectedly in her home in Comonte on 24 December 1865. She was 49 years old. She was beatified by Pope Pius XII on 19 March 1950, the Solemnity of St Joseph.

 

[출처 : 교황청 홈페이지]

참고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녀 파올라 엘리사베타 체리올리’,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516-5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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