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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아우구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

성녀 아우구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

(St. Augustina Livia Pietrantoni)

축 일 : 11월 13일

신 분 : 수녀, 설립자

활동 지역 : 로마(Rome)

활동 년도 : 1864-1894년

같은 이름 : 삐에뜨란또니, 아고스띠나, 아고스티나, 아우구스띠나, 피에뜨란또니



성녀 아우구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는 1864년 3월 27일 이탈리아 리에티(Rieti)의 포차글리아 사비나(Pozzaglia Sabina)에서 태어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라는 이름을 얻었다. 수도 성소를 느낀 그녀는 1886년 22살의 나이로 로마에 있는 자비의 수녀회(애덕 수녀회)에 입회하여 아우구스티나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련기를 마친 후 로마에 있는 700년 전통의 성령(Santo Spiroto)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성녀 아우구스티나 수녀는 1889년 여름부터 위독한 환자나 전염성이 강한 환자들을 돌보며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그러던 중 1893년 9월 폐결핵에 전염되어 위독한 상태에 놓였다. 겨우 병에서 회복된 성녀 아우구스티나는 계속해서 폐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던 중 폭력 문제로 병원에서 쫓겨난 한 환자의 공격을 받고 칼에 찔려 숨을 거두게 되었다. 1894년 11월 13일, 칼에 찔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도 자신을 공격한 이를 용서하였다. 아고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Agostina Livia Pietrantoni)로도 불리는 그녀는 1972년 11월 12일 교황 복자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9년 4월 18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금주의 성인]

성녀 아우구스티나 피에트란토니(St. Agostina Pietrantoni, 11월 13일)


생활 자체가 신앙이자, 말씀...환자 돌보는 소임으로 평생을 바친 '침묵의 모범'

1864~1913. 이탈리아 리에티 출생. 수녀.


성녀 아우구스티나 피에트란토니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마태 6,3)는 성경 말씀을 실천한 분입니다.성녀는 애덕의 수녀회(sisters of charity) 수녀로 활동하면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 '침묵의 모범'으로 칭송받았습니다.


성녀는 농사짓는 부모님 밑에서 11명의 형제자매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일을 돕고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학교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로 학업성적이 뛰어났지만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에 학교에 자주 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녀는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녀는 25살에 애덕의 수녀회에 입회해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성녀는 산토스피리토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소임을 맡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는 통일 문제로 어수선한 때였고 사회 전반적으로 종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성녀가 근무하는 병원 역시 모든 병실마다 걸어놓은 십자가를 떼내며 수도자들에게는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이러한 때에 성녀의 생활은 그 자체가 신앙이고 하느님 말씀이었습니다. 환자들이 성녀를 조롱하고 심한 욕설을 퍼부어도 성녀는 말없이 미소로 응답하며 환자들을 대했습니다. 성녀는 모든 이들이 대하기 꺼려하는 환자들에게도 먼저 다가갔습니다.


성녀는 심한 과로로 결핵에 걸리자 자신의 몸을 추스리기보다는 근무지를 결핵병동으로 옮겨 결핵환자들을 돌볼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성녀는 어느 날 병원에서 한 환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숨졌습니다. 성녀는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숨을 거두기 전 자신을 찌른 환자를 용서하며 성모께 자신을 맡긴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자신을 죽인 이를 기꺼이 용서하고 떠난 성녀는 199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평화신문, 2010년 11월 7일, 박수정 기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읽는 성인전]

성녀 아고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 - 자선활동에 일생을 바친 영웅적인 순교자


리비아 피에트란토니(Livia Pietrantoni, 1864-1894)는 이탈리아의 리에티(Rieti) 근교에서 신앙심이 깊은 소작농 가정에서 10남매 중 한 자녀로 태어났다. 리비아의 아버지는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리비아는 일찍부터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를 간호하고 동생들을 돌보았다. 그 외에도 집에서 기르는 소를 돌보아야 했고 구두를 직접 만들었으며, 매년 올리브를 수확하는 철이 되면 들에 나가 일도 하였다. 또한, 리비아는 다른 처녀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일하였다.


리비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고 많은 청년들이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리비아는 자신이 수도 성소를 받았음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리비아의 가족들도 딸이 결혼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이를 완곡히 거절하고 22세가 되던 1886년 8월 3일, 로마에 있는 자비의 수녀회(The Sisters of Charity, 애덕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리비아는 수녀원에서 아고스티나(Agostina)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수련기를 마치고 아고스티나는 로마에 있는 산토 스피리토(Santo Spirito) 병원에서 2년 동안 근무하였다. 1889년 여름, 그녀는 당시 불치병으로 알려진 폐결핵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되었다.


1893년 9월 아고스티나는 폐결핵에 전염되어 병상에 눕게 되었다. 몇 달 동안 계속 앓던 그녀는 이듬해 병세가 점점 더 위중해졌으며 나중에는 병자성사를 받기까지 하였다.그러나 아고스티나의 중세는 차츰 호전되었고 마침내 병석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긴 투병 끝에 회복되었지만 아직도 체력이 많이 약한 상태였음에도 아고스티나는 다시 폐결핵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병동의 다른 환자들이 폐결핵 환자들과 접촉을 통하여 병이 점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도 병행하였다. 아고스티나가 돌보는 환자는 모두 남자였는데, 그들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불만을 터트리거나 좌절하여 때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여 병약한 아고스티나는 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고스티나는 자신이 맡은 간호 업무를 끝없는 자비의 영적 봉헌으로 승화시켰다.


아고스티나가 돌보는 환자 중에 주세페 로마넬리(Giuseppe Romanelli)라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 화를 내었고 수시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그를 강제로 퇴원시켰다. 그런데 병원에서 쫓겨난 그는 엉뚱하게도 자신이 강제 퇴원이 된 것은 아고스티나 수녀 때문이라고 확신하여 복수를 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1894년 11월 13일 아침, 주세페 로마넬리는 수위가 없는 정문으로 들어와 복도에 숨어 아고스티나 수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그녀가 자신의 곁을 지나가자 칼을 빼어들고 덤벼들었다. 그리고 무방비 상태의 아고스티나 수녀를 일곱 번이나 힘껏 찔렀다. 아고스티나 수녀는 칼에 찔리면서 비명을 질렀으나, 그녀의 생명이 촌각을 다투는 위기의 상황에서 아무도 제때 도착하지 못하여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고스티나 수녀는 숨을 거두기 전, 사고 현장으로 달려온 동료 수녀에게 이러한 사고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자신에게 일어난 것이니 하느님의 뜻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였다.

아고스티나 수녀의 죽음이 알려지자 수많은 로마 시민은 깊은 슬픔 속에서 조문하였고 환자들은 자애로 보살피다가 순교한 영웅이자 ‘심오한 기도에 잠기는 여인’이라며 생전의 아고스티나 수녀를 기렸다. 처음 아고스티나 수녀의 시신은 캄포 베라노(Campo Verano) 뜰에 안장되었다가 1941년 3월 15일 수녀회의 본원으로 이장되었다. 1972년 11월 12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아고스티나 수녀를 복자로 시복하였고, 1999년 4월 18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으로 선포하였다.성녀 아고스티나 리비아 피에트란토니의 축일은 11월 13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2년 5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

 

참고자료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우르술라', 서울(한길사), 2014년, 298-307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우르술라 동정과 동료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292-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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