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Saint Hyacintha Mariscotti)

01/29/2016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Saint Hyacintha Mariscotti)

 

 

 

축       일  :  1월 30일

신       분  :  수녀

활동지역  :  비테르보(Viterbo)

활동연도  :  1585-1640년

같은이름  :  마리스코티, 히야낀따, 히야친따, 히야킨따, 히야킨타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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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St. Hyacintha Mariscotti)

 

- 하느님 사랑 온 몸으로 증거...단식과 고행, 참회의 삶 살며 봉사단체 설립 헌신

- 1585~1640년경. 이탈리아 출생 및 사망

 

 

"성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성녀의 사도직은 수많은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 데 그 어떤 설교보다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교황 비오 7세는 1807년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시성식을 주례하면서 시성식에 참석한 이들에게 이같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을 강조하며 하느님 사랑을 온몸으로 증거한 성녀의 삶을 본받아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이탈리아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성녀는 '타고난' 성인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 성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신심을 보였던 데 반해 성인의 어린 시절은 허영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맛있는 음식, 화려한 옷을 찾았고 자기 자신만 챙기는 철부지 소녀로 자랐습니다.

성녀는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존경받고 싶은 마음에 덜컥 수도회에 입회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잘생긴 귀족 청년과 결혼하는 꿈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녀가 20살이 되던 해에 성녀를 시샘한 동생이 성녀와 결혼하기로 했던 귀족과 약혼해 버립니다.  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은 성녀는 속세와 인연을 끊기로 작정하고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녀가 됩니다. 하지만 성녀의 생활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녀는 아버지에게 부탁해 혼자 살 집을 구해달라고 했고 개인 요리사까지 두며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수도복은 값비싼 천으로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생활한 성녀는 어느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습니다. 성녀를 병문안 온 한 신부는 성녀의 삶을 보고 성녀를 크게 꾸짖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도 성녀에게 잘못됐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성녀는 사경을 헤매면서 자신의 삶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나은 뒤 새 삶을 살아갑니다. 성녀는 대중 앞에서 지난날 삶을 낱낱이 고백하고 참회의 삶을 살겠다고 약속합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누더기 옷에 맨발생활을 했습니다. 단식과 고행의 날들이 이어졌고 봉사단체를 설립해 아프고 병든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봤습니다.

이탈리아에 흑사병이 번졌을 때도 성녀는 전염되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환자들을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성녀를 통해 많은 치유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처음엔 성녀를 비난하던 이들도 차츰 성녀의 생활에 감화됐습니다. 성녀가 과로로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객들이 장례식에 구름처럼 몰려들어 애도했습니다.

-출처 : 가톨릭 평화신문, 2011년 1월 30일, 박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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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히야친타 마레스코티 성녀',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296-298쪽.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히야친타, 마리스코티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909-99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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