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Posts/최근글
Archive/자료
Recent Posts/지난글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
RSS Feed

성 기드온

판관 성 기드온(Saint Gedeon the Judge)

축 일 : 9월 1일

신 분 : 구약인물, 판관, 예언자

활동 지역 : 팔레스타인

활동 년도 : +연대미상

같은 이름 :


성 기드온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12판관 중의 한 명으로 판관기 6장 1절부터 9장 6절 사이에 등장한다. 판관이란 그 시기에 이스라엘의 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말한다. 원래 히브리어의 판관이란 말에는 ‘구원자’란 뜻이 있었던 것 같다. 즉, 백성을 외적(外敵)으로부터 구해주는 사람이다. 나중에는 더 나아가 사람들은 판관에게 판결을 의뢰했고, 그를 일종의 집정관(執政官)으로 받들게 되었다. 그러나 개개의 종족은 아직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이스라엘 전체의 대표자들로 간주할 수는 없었다. 판관기에 의하면 기드온은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족의 침략으로 고통 중에 살 때 하느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았다. 므나쎄 지파에서도 가장 약한 문중의 가장 어린 사람이었던 기드온은 천사를 통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백성들과 함께 미디안족을 쫓아냈다.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판관 6,14)


기드온은 오드니엘, 예훗, 드보라, 입다, 삼손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대판관 여섯 명 가운데 하나이다. 판관들은 왕이 아닌 신분으로 평화시에는 백성의 송사를 가려 재판하고 전시에는 이민족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판관 시대에는 이스라엘 안에 일정한 종교적 현상이 되풀이되었다. 1) 이스라엘이 주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풍산신들을 섬긴다. 2) 주님께서 이민족들을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억압하신다. 3) 이스라엘이 주님께 탄원하면 주님께서 판관을 세우시어 이스라엘을 구하신다. 4) 판관이 죽자 이스라엘은 다시 우상숭배에 빠진다. 기드온의 생애도 이 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판관기의 저자는 기드온의 생애를 서술하는 데에 세 장이나 할애한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수확철마다 쳐들어오는 미디안족과 요르단 동쪽의 유목민들과 남쪽의 아말렉족의 약탈을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저지한 것이다.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라는 뜻이다. 노략질하는 이민족들을 단호히 응징하는 전사에 걸맞는 이름이라 하겠다. 그의 다른 이름 여룹바알은 ‘바알은 (아무개를) 옹호할지어다.’이다. 이 이름의 유래는 아래에서 밝히겠다.


기드온의 소명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살펴본 다른 인물들, 곧 모세, 예레미야, 이사야 등의 소명 이야기와 매우 비슷하다. 다만 기드온의 경우 약속의 징표를 집요하게 요구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기드온은 하느님의 약속을 징표로 보여줄 것을 자주 요구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약성서 새번역) 판관 6. 14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만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 15 그러자 기드온이 말하였다.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밀입니까? 보십시오. 저의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합니다. 또 저는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하여 너는 마치 한 사랑을 치듯 미디안족을 치리라.”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러자 기드온이 또 말하였다. “참으로 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신다면 저와 말씀하시는 분이 당신이시라는 징표를 보여주십시오. 18 제가 예물을 꺼내다가 당신 앞에 놓을 터이니 제가 올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십시오.” 이에 주님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머물러 있겠다.” 하고 대답하셨다.


기드온은 므나쎄 지파에 속하는 아비에젤 사람 요아스의 아들이다. 그 당시 므나쎄 지파는 팔레스티나 중북부의 드넓은 에스드렐론과 이즈르엘 평야에 흩어져서 계단식의 밭을 일구고 가축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그들은 튼튼한 성벽이나 요새를 짓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요르단 동쪽에서 낙타를 타고 습격해 오는 미디안족과 이동방목을 하며 팔레스티나의 구릉 지대로 몰려오는 다른 유목민들, 그리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아말렉족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다. 특히 해마다 수확철에는 어김없이 이들의 달갑지 않은 방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산속으로 틀어가 협곡과 동굴, 그 밖에 접근하기 어려운 곳들에 곡식을 숨겨놓고 지내곤 하였다.


그런데 이 이민족들의 침략과 억압은 이스라엘의 풍산신 숭배 때문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인들은 바알과 아세라로 대표되는 가나안의 풍산신 숭배에 빠져있었다. 본디 아세라는 가나안의 최상신 엘의 아내이지만, 여기서는 가나안인들의 성소에 풍요다산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둥을 뜻하기도 한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도 신성한 나무와 바알 숭배의 제단을 모신 산당의 소유자 또는 관리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날도 기드온은 미디안의 눈을 피해 밀을 감추어두려고 바위를 깎아 만든 포도확 속에서 곡식을 타작하고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기드온에게 소명을 주셨다. “너의 그 힘을 지니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족의 손아귀에서 구원하여라.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14절). 주님의 천사는 이미 12절에서 기드온을 ‘힘센 용사’라고 불렀다. 자기를 찾아온 분의 정체를 모르는 기드온은 “나리,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제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입니까?”(15절) 하고 뒤로 물러선다. 이유는 그가 속한 씨족은 므나쎄 지파에서 가장 약하고, 그 자신도 제 아버지 집안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자”이기 때문이란다. 히브리 말로 “가장 보잘것없는 자”는 “가장 나이가 어린 자”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크게 드러내시려고 이사악, 야곱, 요셉, 에브라임, 사울, 다윗 등을 선택하실 때처럼 사람들이 세운 질서나 서열을 곧잘 뒤집으신다.


기드온의 발뺌에 주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16절)고 약속하신다. 그러자 기드온은 약속의 징표를 요구한다. 주님의 천사는 기드온이 자기를 대접하려고 가져온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큰 돌에서 일으킨 불로 살라버림으로써 그 징표를 제시한다. 여기서 난데없이 나타난 불이 기드온이 가져온 음식을 살라버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것을 번제물처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는 뜻이다(출애 3,2-6; 레위 9,24; 1열왕 18,38; 1역대 21,26 등 참조). 불이 음식을 삼켜버리고 주님의 천사가 기드온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기드온은 비로소 자기가 주님을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죽을까 두려워하였다. 주님을 뵈오면 죽게 된다는 통념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기드온을 안심시키며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날 밤 기드온은 주님의 분부를 받들어 자기 아버지의 바알 제단을 허물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 상도 잘라버렸다. 밤중에 이 일을 한 것은 바알을 숭배하는 아버지와 다른 친족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기드온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뜻밖에도 그의 아버지가 나서서 아들을 변호하며 “자기 제단이 헐렸으니 바알이 신이라면 자신을 직접 옹호해 보라고 하시오.”(31절) 하고 말하였다. 여가서 여룹바알이라는 기드온의 다른 이름이 나왔다. 본디 여룹바알은 ‘바알은 (아무개를) 옹호할지어다.’인데, 여기서는 거꾸로 바알이 자신을 옹호해야 한다. 바알의 무능을 비웃는 풍자이다.


미디안족과 아말렉족과 요르단 동쪽의 이민족들이 다시 이즈르엘 평야에 들어와 진을 쳤다. 그러자 주님의 영에 사로잡힌 기드온은 므나쎄 땅뿐 아니라 즈불룬과 납달리에도 전령을 보내어 군사들을 모았다. 기드온은 다시 하느님께 징표를 요구하였다. 타작마당은 말라있는 채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해주시자, 이번에는 반대로 양털 뭉치는 말라있고 다른 땅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달라고 하였다. 주님께서 그대로 해주시자, 기드온은 확신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심약한 사람들은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하셨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주님을 제쳐놓고 자기 손으로 승리하였다고 자랑할까 염려가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내고 만 명만 남겼는데, 주님께서는 아직도 군사들이 너무 많다고 하시며 군사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 개가 핥듯이 물을 핥는 자만 따로 세우라고 하셨다. 그 수가 삼백 명이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들만 데리고 적군과 맞서라고 하셨다.


결국 주님의 도움에 힘입어 적은 수로 대승을 거두고 나자, 이스라엘인들이 기드온을 임금으로 내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드온은 단호히 그들의 요구를 거절한다. “내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니고 내 아들이 여러분을 다스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을 다스리실 분은 주님이십니다”(8,23). 이 말대로 기드온이 과연 왕권을 전혀 행사하지 않았는가? 그의 아들 이름, 아비멜렉이 시사하는 바는 그 반대이다. 아비멜렉은 히브리 말로 ‘나의 아버지는 임금이시다.’라는 뜻이다. 아마도 기드온은 므나쎄를 비롯하여 에브라임, 아셀, 즈불룬 지파를 포함하는 이스라엘 일부에서 실제로 임금 행세를 하였을 법하다. 그가 동방의 절대군주처럼 많은 아내를 두고 아들을 일흔 명이나 낳았다는 사실도 이를 반영한다.


기드온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며 큰 승리를 거둔 용장이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큰 잘못을 저질렀다. 그는 하느님께 먼저 전리품을 바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대신, 전리품 가운데서 금붙이들을 모아 ‘에봇’이라는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인들이 그것을 받들며 창녀짓을 하게 하였다.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 곧바로 번제물을 드렸던들 그를 둘러싼 왕권 시비도 없었을 것이다. 판관기 저자는 이 일을 가리켜 기드온과 그 집안에 씌워진 올가미라고 한다(8,27). 실제로 그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인들은 그의 집안에 호의를 보이지 않았고 소실의 아들 아비멜렉의 손에 일흔 명의 자식들이 살해되었다.


기드온은 분명히 용감한 전사였다. 그러나 그가 이민족들을 쳐부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이지 그와 그의 군대가 용맹하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에게 소명을 주시면서 “바로 내가 너를 보낸다.”고 하신 것이다.


소명을 받은 자는 언제나 주님의 능력과 도움으로 소명을 완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태현 갈리스도/ 신부,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사도직) [경향잡지, 1999년 8월호]

 

[성경 속의 인물] 판관 기드온


기드온(Gideon)의 말뜻은 ‘찍다, 베다’란 의미를 지녔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의 일생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되겠다. 그는 므나세 지파 출신으로 이스라엘이 ‘미디안 족’으로부터 힘겨운 수탈을 당할 때에 출현한다.


기드온이 등장하기 전의 판관은 드보라였다. 그녀의 치세 40년은 이스라엘이 태평성대를 누린 시기였다. 그러나 평온이 길어지자 ‘아모리인’들의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모든 것이 잘 되자 하느님을 망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주님께서는 잘못을 깨닫도록 ‘보속’을 내리신다. 미디안의 침공이었다. 당시 미디안은 낙타를 길들인 ‘고도의 기동성’을 갖추고 있었기에 군사적인 위력이 막강했다.


미디안이 쳐들어오자 이스라엘은 금방 초토화되고 지도자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한 순간에 이스라엘은 미디안의 속국이 된 것이다. 그들의 지배는 가혹했다. 백성들이 먹고 살 것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수탈을 7년간이나 감행했다. 고통이 깊어지자 유다인들은 죄를 지었음을 깨닫고 구원을 부르짖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하는 판관이 기드온이다.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밀을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미디안 사람들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주님께서 부르지 않으셨더라면 그렇게 평범한 인물로 살았을 기드온이다. 소명을 깨닫자 그는 돌변한다. ‘바알 제단’과 ‘아세라 목상’을 제거하고 미디안에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야훼의 지시에 따라 불과 ‘삼백 명의 군인’으로 미디안의 부대를 제압하였다. 이때 사용한 전술은 야밤에 적진을 포위하고 있다가 일제히 ‘나팔을 불며 고함을 지르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적들은 혼란에 빠져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도망을 쳤다. 철저한 하느님의 개입이었다.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은 주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처음부터 깨달았던 것이다.


이후 기드온은 판관이 되어 40년을 다스렸다. 한편 이 시기에는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과도기였다. 그래서 열두 지파의 대표들은 기드온을 왕으로 모시려 했다. 미디안을 몰아낸 능력 때문이었다. 그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힘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러나 기드온은 반대한다. 이스라엘의 임금은 야훼이심을 고백하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면서 그는 많은 아내와 첩을 거느렸다. 아마도 각 지역의 세력가들이 딸을 제공하며 그와의 친분을 두텁게 하려 했을 것이다. 아무튼 그가 낳은 아들은 70명이 넘었다.


이러한 세속적인 습관은 호된 시련을 남겼다. 기드온이 죽자 그의 아들 아비멜렉이 70명의 형제들을 학살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킨 것이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어 3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하지만 하느님의 선택은 그가 아니었다. 이후 아비멜렉은 스켐의 지주들과 내전을 겪으면서 살해된다. 인간의 힘만으로 이스라엘을 지배하려 했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2008년 10월 12일 연중 제28주일 가톨릭마산 14면, 신은근 바오로 신부(삼천포본당 주임신부)]

 

역사서 해설과 묵상 (43)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판관 6,13)


판관기 6장은 기드온의 소명설화다. 곡식은 보통 바람이 잘 통하는 마당에서 타작해야 하지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 은밀한 곳, 곧 바위를 깎아 만든 포도주 틀 속에서 곡식을 털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소명을 주는 이야기다.


주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지만, 기드온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계시다면, 어째서 저희가 이 모든 일을 겪고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저희를 버리셨습니다. 저희를 미디안의 손아귀에 넘겨버리셨습니다”(판관 6,13).


40대 어떤 자매님의 이야기다. 남편은 자기 집을 하숙집으로 아는지, 도대체 아내와 자녀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아침에 밥 먹고 집을 나가면 무엇이 그리 바쁜지 밤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자녀들도 크니까 어머니와 함께 하기보다는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기 바빴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새벽에 들어와 자리에 누우면 점심때가 지나도록 잠만 잤다. 어머니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하는 꼴을 보며 이 자매님은 허무한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중세의 기사처럼 나를 떠받들어주고, 평생 그렇게 할 것처럼 하던 남편이 이렇게 무관심한 목석으로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나에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 있단 말인가’이 자매님은 자신이 세상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에게 버림받고, 친구와 이웃들에게 버림받아 혼자 세상에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40대의 아줌마가 가출해서 갈 곳이 어디 있겠는가? 언뜻 생각난 곳이 나환자촌이었다. 성당에서 봉사활동으로 몇 번 간 적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환자촌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 느티나무 밑에 어떤 노인이 하염없이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그냥 바람을 쐬러 나온 할아버지려니 했더니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땅바닥에 묵주를 놓고 엄지발가락으로 누르고 있었다.


“할아버지, 왜 그렇게 묵주를 땅바닥에 놓고 기도하십니까”“


보다시피 나는 문둥병에 걸려 손가락과 발가락을 다 잃었습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하느님께서 내게 엄지발가락 하나를 남겨주셔서 이렇게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이지요. 이 발가락 하나 덕분에 땅바닥에 묵주를 놓고 묵주알을 돌릴 수 있으니 얼마나 하느님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 자매님은 그 자리에서 퍼뜩 깨달은 바가 있어 발길을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하나 남은 발가락에 감사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무엇이 불행하단 말인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미디안족의 침략을 받아 괴로워할 때, 기드온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버리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오히려 하느님은 더 가까이 계셨다. 우리는 종종 어렵고 힘들 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내게 관심이 없을 때,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하느님에게서도 버림받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나처럼 외로운 사람은 없다고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때가 사실은 하느님께서 가장 가까이 계시는 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묵상주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판관 6,12)

기드온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곧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여기서 ‘힘센 용사’를 내 이름과 세례명으로 바꿔 이 성경구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2013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이민의 날) 청주주보 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