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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

성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

(Saint Christopher Magallanes Jara)


축 일 : 5월 21일

신 분 : 신부, 순교자

활동 지역 : 멕시코(Mexico)

활동 년도 : 1869-1927

같은 이름 : 끄리스또발, 크리스또뽈, 크리스터퍼, 크리스토발, 크리스토퍼, 크리스토포루스, 크리스토폴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Cristobal Magallanes Jara)로도 알려진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Christophorus Magallanes Jara, 또는 크리스토포로 마가야네스 하라)는 멕시코 혁명정부의 부당한 종교 탄압에 저항해 발생한 크리스테로 전쟁(the Cristero War, 1926-1929년) 중에 반란을 선동했다는 날조된 혐의를 받고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되어 재판도 없이 죽임을 당한 순교자로서 가톨릭 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1869년 7월 30일 멕시코 서부 할리스코(Jalisco) 주(州)의 토타티케(Totatiche)에서 농부였던 라파엘 마가야네스(Rafael Magallanes)와 클라라 하라(Clara Jara)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목동으로 일하던 그는 19살 때에 과달라하라(Guadalajara)에 있는 산 호세(San Jose)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30세에 과달라하라에 있는 산타 테레사(Santa Teresa)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같은 도시의 한 학교에서 교목신부로 봉직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토타티케의 본당신부로 임명된 후 학교와 목공예품 상점을 설립하고, 칸데라리아(Candelaria) 댐 건설을 돕는 등 고향의 발전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멕시코 서부 시에라마드레 산맥(Sierra Madre Mts.)에 거주하는 소수민족인 후이촐족(Huichol)의 복음화도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아스퀠탄(Azqueltan)에 있는 아메리카 인디언 마을에 선교 기관을 설립했다. 1914년 정부로부터 과달라하라의 신학교를 폐쇄하라는 결정이 내려졌을 때, 그는 자신의 본당에서 신학교를 열 것을 제의하였다. 1915년 7월 토타티케에 개교한 신학교는 빠르게 성장해 다음해 이미 17명의 학생이 등록했고, 학칙과 두 명의 교수를 파견해준 과달라하라 교구의 호세 프란치스코 오로스코 이 히메네스(Jose Francisco Orozco y Jimenez) 대주교로부터 승인도 받았다.


그는 무장반란에 반대하여 많은 저술과 설교를 했으나 오히려 그 지역의 크리스테로 반란을 도모했다는 부당한 고발을 당해 체포되었다. 1927년 5월 21일 농장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에 체포된 그는 얼마 안 남은 소지품마저 사형 집행인에게 주었고 그들의 죄 또한 용서해주었다. 그리고 아무런 재판도 없이 4일 후인 5월 25일 할리스코의 콜로틀란(Colotlan)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 칼로카 코르테스(Augustinus Caloca Cortes) 신부와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인에게 “나는 결백하며, 나의 피로써 나의 멕시코 형제들이 일치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 간구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성 크리스토포루스 마가야네스 하라는 1992년 11월 22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5월 21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으로부터 크리스테로 전쟁과 관련하여 희생된 24명의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같은 날 성 호세 마리아 데 예르모 이 파레스(Jose Maria de Yermo y Parres, 9월 20일) 신부와 최초의 멕시코인 성녀가 된 성녀 마리아 데 헤수스 사크라멘타도 베네가스 데 라 토레(Maria de Jesus Sacramentado Venegas de la Torre, 7월 30일) 수녀도 함께 시성되었다.



출처: 카톨릭 홈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 - 25명의 멕시코 순교자들(1915-1928)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멕시코 정부 당국은 멕시코에 어용(御用) 천주교회를 세우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지 않는 고위 성직자들과 성교회에 충실한 주교들을 추방하고 그 자리에 자신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앉히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멕시코에서 활동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을 모두 추방하였고 공권력을 이용하여 각종 학교와 신학교를 강제로 폐쇄하였다.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자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는 멕시코의 주교들과 함께 멕시코 국민이 신앙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멕시코 권력자들은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노력에 대한 보복의 일환으로 공권력을 강압적으로 이용하여 교회를 강제로 폐쇄하였다. 또한 사제들을 잡아 가두었고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여 온 평신도들에게는 교회를 떠날 것과 앞으로는 미사에 참례할 수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이때 교회 당국의 지도하에 이루어지는 평신도의 조직적 활동인 ‘가톨릭 액션’(Catholic Action)은 이러한 사태에 저항하면서 정부가 홍보하는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허구라는 것을 알리고 이러한 때일수록 신앙생활을 더 잘해야 한다고 신자들을 격려하였다. 멕시코 정부는 가톨릭 액션에 속한 사제와 평신도들을 박해의 표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할리스코(Jalisco)에서 15명의 사제가 순교하였고, 사카테카스(Zacatecas)에서는 4명이 순교하였으며, 치와와(Chihuahua), 콜리마(Colima), 두랑고(Durango), 과나후아토(Guanajuato), 게레로(Guerrero), 모렐로스(Morelos)에서는 각각 한 명씩 순교하였다. 순교자 모두 순교하기 전 소름 끼칠 만큼 참혹하게 고문을 당하였고 순교자 대부분은 총살형에 처해졌다. 세 명의 평신도인 다비드(David), 마누엘(Manuel), 살바도르(Salvador)는 그들의 교구 사제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s Sainz)와 함께 순교하였다. 이 모든 순교자는 그 가혹했던 박해 시기에 참된 신앙을 위해 죽기까지 모든 희생을 감수한 또 다른 멕시코 사람들의 표상이 되었다.


‘가톨릭 액션’ 활동에 속한 순교자들은 다음과 같다.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Cristobal Magallanes Jara, 1869-1927), 로만 아다메 로살레스(Roman Adame Rosales), 로드리고 아길라르 알레만(Rodrigo Aguilar Aleman), 훌리오 알바레스 멘도사(Julio Alvarez Mendoza), 루이스 바티스 사인스(Luis Batis Sainz), 아구스틴 칼로카 코르테스(Agustin Caloca Cortes), 마테오 코레아 메가야네스(Mateo Correa Megallanes), 아틸라노 크루스 알바라도(Atilano Cruz Alvarado), 미겔 데 라 모라(Miguel De La Mora), 페드로 에스케다 라미레스(Pedro Esqueda Ramirez), 마르가리토 플로레스 가르시아(Margarito Flores Garcia), 호세 이사벨 플로레스 바레라(Jose Isabel Flores Varela), 다비드 갈반 베르무데스(David Galvan Bermudez), 살바도르 라라 푸엔테(Salvador Lara Puente), 페드로 데 헤수스 말도나도 루세로(Pedro de Jesus Maldonado Lucero), 헤수스 멘데스 몬토야(Jesus Mendez Montoya), 마누엘 모랄레스(Manuel Morales), 후스티노 오로나 마드리갈(Justino Orona Madrigal), 사바스 레예스 살라사르(Sabas Reyes Salazar), 호세 마리아 로블레스 우르타도(Jose Maria Robles Hurtado), 다비드 롤단 라라(David Roldan Lara), 토리비오 로모 곤살레스(Toribio Romo Gonzalez), 예나로 산체스 델가디요(Jenaro Sanchez Delgadillo), 트란쿠일리노 우비아르코 로블레스(Tranquilino Ubiarco Robles), 다비드 우리베 벨라스코(David Uribe Velasco)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2년 11월 22일 크리스토발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을 시복하였고, 2000년 5월 21일 그들을 모두 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시성식에서 신앙을 위해 순교한 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늘 성인으로 선포된 분들 대부분은 재속 사제들이며, 세 분의 평신도들은 그 어려운 박해의 시기에 사제들을 돕는 데 열성적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당신들이 사랑하는 조국 멕시코 땅에서 가톨릭 종교에 대한 증오를 촉발하는 종교 박해가 심각해졌을 때,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직책을 잘 수행하기 위해 적극 투신하였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자신들의 박해자들을 명백하게 용서하면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평온하면서도 침착하게 그리고 자유로운 태도로 순교하였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교계 공동체의 물질적 복지 향상에도 기여하면서 이 공동체에 깊이 뿌리를 내린 삶의 결실로서 드러난 하느님께 대한 성실한 믿음과 가톨릭 신앙에 대한 충직한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전 세계 모든 교회와 특히 멕시코 사회에 큰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멕시코 전역에 불어 닥친 박해의 광풍 앞에서 온갖 시련을 꿋꿋이 견뎌온 교회는 이제 성인으로 선포된 이분들의 신앙에 대한 증거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이 사회를 살아가는 멕시코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조화 속에 살면서 복음이 지닌 풍부한 가치로 이 사회를 변혁시키기를 축원합니다. 교회는 박해를 받을 때 수많은 사제와 수도 성소자가 생겨났고 많은 가족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바대로 양성되었으며, 멕시코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젊은이들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자라나기 때문에 앞으로 교회는 더욱 성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 사제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의 빛나는 모범이 하느님께 대한 여러분의 신앙을 쇄신시켜 가는 데에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신앙이 멕시코 사회를 끊임없이 변혁하는 원동력이 되어 정의와 형제애 그리고 조화로움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게 되기를 빕니다.”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25일이다.

[교회와 역사, 2012년 8월호, 번역 송영웅 바오로(봉명학원 재단이사)]


멕시코 주교단, 성직자 정치 활동 보장하는 헌법 개정 촉구


정치적 입지 아닌 종교 자유 원해


- 과달루페 성모 휘장을 앞세우고 행진하는 멕시코 신자들.멕시코교회는 과거 혁명좌파 정권에게 빼앗긴 종교의 자유 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멕시코 주교들이 성직자의 정치적, 사회적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헌법 개정을 촉구해 관심이 쏠린다. 주교들은 지난 2월 말 "멕시코 교회는 '숭배의 자유'가 아니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길 원한다"며 헌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멕시코는 1910년대 혁명 혼란기에 교회와 국가가 극한 불화를 겪은 이후 성직자의 정치ㆍ사회활동, 교육기관 운영, 불필요한 재산소유 등을 법률로 금지했다. 특히 교회의 대사회 활동을 극도로 제한한 헌법 3조와 27조 등은 가톨릭에 족쇄를 채운 악법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사제의 로만칼라 착용 금지 조항이 1992년에야 폐지됐을 정도다.


주교들의 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여론은 찬반으로 갈려 있다. 좌파 민주혁명당은 "150여 년간 엄격하게 지켜온 정교분리 원칙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적 입지 확보 목적 아니다


그러나 가톨릭 법과대학 아르멘도 마르티네즈 학장은 "주교들의 헌법 개정 제안은 박물관에 가야 할 낡은 법률을 바꾸자는 것이며, 멕시코 헌법을 유엔의 인권선언 수준에 맞추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시티의 로베르토 리베라 추기경은 "주교단 제안은 정교분리 원칙을 흔들자는 게 아니다. 우리 제안을 시저(Caesar)의 권력을 넘보려는 행동으로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사회 일각의 비난 여론에 분명한 입장을 표명했다. 또 카를로스 메를로스 주교는 "교회법상 성직자는 정치적 선거에 출마할 수도 없다"며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고 말했다.


2006년 집권한 국민행동당은 가톨릭에 우호적 입장이다. 현재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민행동당은 주교들 제안을 수렴해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87%가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 여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혁명좌파의 반교회 정책

이같은 멕시코 상황을 이해하려면 멀게는 19세기 초반의 독립운동, 가깝게는 1910년대 혁명 혼란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정권을 잡은 독립 및 혁명 좌파세력은 교회 소유 재산, 학교운영권 등 교회 기득권을 박탈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교회와 갈등을 빚었다.


집권 세력이 1917년 헌법 3조를 통해 식민시대 이래로 교회가 갖고 있는 기득권을 완전히 박탈하자 교회는 노동자, 농민들과 합세해 저항운동을 전개했다. 토지와 자유를 요구하는 농민들 목소리와 종교 자유를 요구하는 교회 목소리가 섞인 게 멕시코 혁명이다. 농민들은 멕시코 교회의 상징인 과달루페 성모님을 앞세우고 정부군에 맞섰다.


정부는 마침내 교회의 반정부 집회 금지와 강론 전면 금지, 외국인 신부 추방, 등록거부 수도원 폐쇄라는 초강수를 뒀다. 교계 단체들과 신자들은 '종교자유 수호를 위한 전국 연맹'을 조직, 무장투쟁을 불사하며 이에 맞섰다. 이 반정부 운동이 소위 크리스테로(그리스도 왕 만세라는 의미) 운동이다.


멕시코 정부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문을 계기로 1980년대 후반부터 완화정책을 펴고 있다. 지금은 정부와 교회의 관계가 상당히 진전된 상태다. [평화신문, 2008년 4월 6일, 멕시코시티(멕시코)=외신종합]

참고자료


■ 한국교회사연구소 엮음, 송영웅 옮김, 오늘 성인(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시성한 성인들) - ‘성 크리스토발 마가야네스 하라와 그의 동료 순교자들’,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14년, 206-216쪽. EndFrag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