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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01일


5월01일 일요일(백) 부활 제6주일

Sixth Sunday of Easter

성 령

오늘은 부활 제6주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령에 대한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성령의 뜻을 알아차리고 바른 결정을 내립니다. 묵시록의 저자는 성령의 감도를 받고 천상 예루살렘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협조자 성령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령은 하느님의 거룩한 영이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제1독서는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안티오키아에 있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주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그들과 맞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논쟁이 심해지자 신도들은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문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모였으며 처음으로 예루살렘 사도회의가 열렸습니다. 예루살렘 모교회 지도자 야고보는 성령 안에서 올바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유다교의 관습을 강요하지 않고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성령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다만 이방인들은 유다인들에게 혐오감을 줄만한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제2독서는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거룩한 도성 천상 예루살렘은 하늘의 영광에 싸여 있어서 매우 빛나며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도성 천상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만물의 주재자이신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도성 천상 예루살렘에는 그곳을 밝혀 줄 해나 달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도성을 밝혀주고 어린양이 도성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도성의 성문은 종일토록 닫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정한 것은 아무 것도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흉물스러운 짓과 거짓을 일삼는 자들은 절대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만이 거룩한 도성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킬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진리의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참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계실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주님의 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성령과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알고 희망하는 것입니다. 진정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평화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 사도행전 15, 1-2. 22-29

<성령과 우리는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해설) 야고보의 해결책은 유다인과 이방인 모두를 구하는 현명한 절충안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유다 율법의 굴레를 씌우지 않고 곧바로 그리스도교에 영입되는 것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다만 이방인들은 유다교의 전통적 종교 관습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유다인들에게 혐오감을 줄만한 행동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22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 자기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뽑아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함께 안티오키아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뽑힌 사람들은 형제들 가운데 지도자인 바르사빠스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스였다. 23 그들 편에 이러한 편지를 보냈다. “여러분의 형제인 사도들과 원로들이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다른 민족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24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 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하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25 그래서 우리는 사람들을 뽑아 우리가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오로와 함께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뜻을 모아 결정하였습니다. 26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사람들입니다. 27 우리는 또 유다와 실라스를 보냅니다. 이들이 이 글의 내용을 말로도 전할 것입니다. 28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필수 사항 외에는 여러분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9 곧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들만 삼가면 올바로 사는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요한 묵시록 21, 10-14.22-23 <또는 22,12-14.16-17.20> <천사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을 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해설) 예루살렘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성전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는 주님의 성전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새 땅에 임하심으로써 진정한 성전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어린양이 새 예루살렘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해와 달 그리고 등불이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과 어린양이 새 예루살렘의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10 천사는 성령께 사로잡힌 나를 크고 높은 산 위로 데리고 가서는,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22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23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 요한 14, 23-29 <또는 17,20-26>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해설) 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대신하여 가르쳐 주시고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상기시켜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새로운 가르침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계시를 계속 이행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상기시켜 줄 협조자 곧 성령은 예수님의 계시 내용을 더욱 심화시키고 현실화시키면서 증언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3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26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29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14: 23-29

23 Jesus replied: Anyone who loves me will keep my word, and my Father will love him, and we shall come to him and make a home in him. 24 Anyone who does not love me does not keep my words. And the word that you hear is not my own: it is the word of the Father who sent me. 25 I have said these things to you while still with you; 26 but the Paraclete, the Holy Spirit, whom the Father will send in my name, will teach you everything and remind you of all I have said to you. 27 Peace I bequeath to you, my own peace I give you, a peace which the world cannot give, this is my gift to you.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or afraid. 28 You heard me say: I am going away and shall return. If you loved me you would be glad that I am going to the Father, for the Father is greater than I. 29 I have told you this now, before it happens, so that when it does happen you may believe.






그리스도의 진리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 신앙심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존중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람들에게 베푼 나눔과 섬김과 사랑을 하느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행하게 하시는 분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성령이십니다.



2016년 05월 01일 일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https://youtu.be/0KB8yY_hs60

온 맘 다해(with all my heart)- 다윗과 요나단

성령을 약속하시다.

+ 요한 14, 23-29

1. 나는 세상에서 어떤 평화를 찾고 있습니까? 물질적인 것입니까? 내가 항상 불안하고 두렵다면 왜 입니까? 세상이 주는 평화와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얻어야하는지 잠시 생각에 머물러 보십시오.


2. 나는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께 항상 어떤 대가를 요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예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나는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고 지키도록 노력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줄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나는 일상 안에서 언제 성령의 활동을 체험하고 있습니까?




예언자 성 예레미야(Prophet Saint Jeremiah)

축 일 : 5월 01일

신 분 : 구약인물, 예언자

활동 지역 : 이스라엘

활동 년도 : 650-588년경BC

같은 이름 : 예레미아, 예레미아스, 제레미, 제레마이아

성 예레미야(Jeremias)는 구약성서 예언서 중 하나인 예레미야서의 저자이다. 만일 성서에 이 예언자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는 그 종교적 본질을 아주 달리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가 마음과 인격의 종교를 주창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언자 이사야보다 1세기 뒤에, 그러니까 기원전 650년경 예루살렘 근교의 어느 사제 가문에서 출생하였다. 성서는 예레미야의 생애와 성격을 그 어느 예언자들 보다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예레미야를 3인칭으로 묘사하는 이야기들이 성서에 다수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기원전 626년 그러니까 요시야 왕 치세 제13년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젊은 예언자로 나섰다(예레 1,2). 그는 유대왕국의 멸망이 예견되었고 드디어는 예루살렘의 몰락을 초래한 비극적 시대를 살고 있었다. 요시야왕의 종교개혁과 주권회복은 유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지만, 불행하게도 609년에 그 왕이 므기토에서 전사하게 됨으로써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고대 중동의 세계는 또다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으니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가 612년에 함락됨으로써 바빌론제국이 세력을 구축하게 되었다.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은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자 이집트는 유대왕국을 사주하여 바빌론의 지배에 항거하도록 하였으니, 느브갓네살은 597년에 예루살렘을 함락하였고 주민의 일부를 유배지로 끌고 갔다. 이집트의 조종에 끝내 놀아난 유대는 또다시 바빌론 세력에 항거하였다. 587년에 바빌론 군대는 한 번 더 예루살렘에 쳐들어와 성전을 깡그리 파괴하였고 저항세력의 지도자들을 또다시 유형지로 끌고 갔다.


예레미야는 이 어두운 시대의 역사적 비극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가 이 비극을 좌시한 것은 아니었다. 예언자는 지도자와 민중에게 하느님 말씀의 대변자로 나서서 맹렬히 설교했고 위협했으며 왕국의 몰락을 예고했던 것이다. 다윗의 왕좌를 차지했던 유대의 왕들은 예언자의 이 불칼 같은 경고를 아예 무시했으며 또 군인들은 예레미야가 패배주의를 선동한다고 비난하며 그를 박해하고 고문하며 투옥시키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강기슭에 유배가 있던 사람들(시편 137)에게서 희망을 보았지만 망명하는 것을 끝내 거부하고 고국 땅 팔레스티나에 머무르기로 하였다. 그의 보호자는 바빌론인들이 임명한 총독 게달리야였다. 하지만 유태인의 한 무리가 총독을 암살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은 바빌론인들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레미야를 인질로 삼아 이집트로 망명하였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이집트에서 소리 없이 죽어간 것 같다.


이 험난한 운명의 사나이의 드라마는 단순히 사건들만을 반영하고 있지는 않다. 예언자 예레미야의 전 생애가 일종의 비극이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끝까지 그 말씀에 충실하다 보니, 예레미야는 그야말로 ‘말씀의 고독한 예언자’가 되고만 것이다. 그는 성품이 온순했고 사랑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야훼는 그에게 ‘무너뜨리고 파괴하며 전복하고 없애버리는’ 사명(1,10)을 주셨다. 그의 예언은 끝없는 불행만을 예고하였다(20,8). 예레미야는 평화를 원했건만 자기 가족과 왕들과 사제들, 그리고 거짓 예언자들과 모든 민중을 반대하여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온 나라 안에서 싸움과 불화의 사나이로 통한 것”이다(15,10). 그가 이 같은 사명을 수행하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할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예레미야는 말씀에 의해 완전히 가루가 될 뻔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20,9). 하느님과의 내적인 대화는 온통 고통의 외침이었다. “무엇 때문에 나의 고통은 끝이 없나이까?”(15,18) 욥의 저주를 예고한 예레미야의 그 외침은 고백론의 절정이다. “내가 태어난 그날은 저주받을지어다!”(20,14 이하).


하지만 이 고통은 예레미야의 영혼을 정화시켰으니 하느님과의 내밀한 친교를 가능케 하였다. 우리에게 이 예언자가 그토록 귀중하고 가까운 인물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계약을 성문화시켜 예고하기에 앞서(31,31-34) 자신이 먼저 마음의 종교와 내적인 종교를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인격적 종교는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을 심화시켰다. 하느님은 마음과 콩팥을 꿰뚫어 보시는 분(11,20)이요, 각자의 행실대로 갚아주시는 분이다(31,29-30). 하느님과의 우정은 인간의 거짓스러운 마음의 소산인 죄에 의해 끊어진다. 거짓말이 모든 죄의 뿌리란 것을 예레미야만큼이나 강조한 사람은 없다(4,4; 17,9; 18,12). 이 점에 관한 한 예레미야는 호세아 예언자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율법은 그에 의해 내면화되었으며 또 하느님과의 모든 관계는 마음의 소산임을 그가 밝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인간의 개인적 인격에 큰 관심을 둔 것으로 보아 신명기(申命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물론 그가 신명기에 바탕을 둔 요시야왕의 개혁을 처음에는 환영하였으나 마음의 회개가 없는 제도적 개혁이 무능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민중의 윤리적 종교적 삶을 변혁시키기 위하여 내적 인간의 개조 없이는 불가능함을 예레미야가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살아생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으나 죽은 뒤의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다. 마음의 종교에 기초를 둔 ‘새로운 계약의 사상’은 예레미야로 하여금 유다이즘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다. 우리는 에제키엘서와 제2 이사야서(40-55)와 시편들에서도 그의 영향을 찾아 볼 수가 있다. 마카베오 시대의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민족의 수호자들 중의 한사람으로 꼽았다(2마카 2,1-8; 15,12-16). 예레미야는 힘과 물질보다는 영성적 가치를 더 중대시하였고 또한 영혼이 하느님과 맺은 내밀한 관계를 밝혔다 하여 이 예언자는 그리스도교의 새 계약을 준비한 인물로 통한다. 말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말씀 때문에 당한 그의 고통은 이사야서 53장의 야훼의 종의 모습을 예고하였으니, 예레미야는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앞질러 보여 준 것이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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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6년 5월1일(백) 부활 제6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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