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Posts/최근글
Archive/자료
Recent Posts/지난글
Follow Us
  • Facebook Basic Square
  • Twitter Basic Square
  • Google+ Basic Square
RSS Feed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Saint Louis Mary Grinion)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Saint Louis Mary Grinion of Montfort)


축 일 : 4월 28일

신 분 : 신부, 설립자, 증거자

활동 지역 : 몽포르(Montfort)

활동 년도 : 1673-1716년

같은 이름 : 그리농, 누수,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프랑스 몽포르의 어느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성 루도비쿠스 마리아 그리뇽(Lodovicus Maria Grinion, 또는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은 렌(Rennes)의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은 후 170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의 첫 임지는 푸아티에(Poitiers)의 한 병원이었는데, 병원 관계자의 재정비로 인하여 원성을 사게 되자 사임하였다. 그는 이 병원을 떠나기 전에 일단의 여성 그룹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가 후일 ‘지혜의 딸 수녀회’가 되었다. 그는 주로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는데, 이것이 또 그곳 주교의 원성을 듣게 되어 설교권을 박탈당하였다. 그래서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로부터 선교사 총대리로 임명되어 브르타뉴(Bretagne) 선교 길에 올랐다.


그가 늘 문제를 일으키게 된 주된 이유는 과도한 신심 때문이었으나 또한 그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의 주요 신심은 마리아와 로사리오(묵주기도)였다. 그는 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1715년 그는 수 명의 사제들을 규합하여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생로랑쉬르세브르(Saint-Laurent-sur-Sovre)에서 운명하였고 1947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가톨릭 홈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


브리타뉴의 몽포르 마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사제가 된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은 클레멘스 11세 교황에게서 교황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 프랑스 서쪽 지역을 다니면서, 영원한 지혜의 신비이시며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였고,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이르는 성덕의 길을 가르쳤으며, 동료 사제와 수사들, 복자 마리아 루도비카 트리세의 수녀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히 마리아 영성에 대하여 많은 저술을 남기고, 1716년 특히 4월 28일 뤼송 교구의 생 로랑 쉬르 세브르 시에서 선종하였다.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의 소고“복되신 동정녀에 대한 참된 신심”에서

(nn. 120-121. 125-126: Oeuvres completes, Seuil, Paris, 1966, 562-563, 566-567)


온전히 당신의 것


우리 완덕의 정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그분과 결합되도록 자신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가장 큰 신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완전하게 닮고 그분과 결합하며 그분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마리아는 당신 아드님을 온전히 닮으셨으므로, 다른 신심에 앞서, 영혼을 우리 주님께 봉헌하고 주님과 최대한 닮게 하는 이 신심은 주님의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 성모님께 드리는 신심이기도 합니다. 영혼을 마리아께 봉헌하면 할수록 그 영혼은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는 완전한 봉헌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 드리는 최고의 완전한 봉헌이며, 이것이 내가 가르치는 신심입니다.


이 신심의 가장 훌륭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한 세례 서원이나 서약의 완전한 갱신입니다. 사실 그 신심으로 그리스도 신자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이렇게 마리아를 통하여 온전히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자신을 봉헌하면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와 결합하시고 우리를 당신께 결합시키시려고 선택하신 가장 알맞은 길이신 동정 마리아께 우리를 봉헌하는 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바쳐야 할 궁극 목적이신 주 예수님께 우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 하느님이십니다.


또한 생각해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자기 입이나 대부 대모의 입으로 엄숙하게 마귀와 마귀의 유혹과 마귀의 행실을 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스승이며 주님으로 삼았으며, 사랑으로 종이 되어 주님을 섬기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신심에도 참으로 알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귀와 세상과 죄와 자기 자신을 끊어 버리고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자신을 봉헌합니다.


세례 때에는 누구나, 적어도 명시적으로는,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하지 않으며 자기 선행의 공로를 바치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은 다음에 그리스도인은 자유로이 공로를 다른 이에게 적용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하여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신심에서 그리스도 신자는 분명하게 마리아의 손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주님께 온전히 자기 행실의 공로를 바칩니다.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드 몽포르 사제


프랑스 브레타뉴의 몽포르 마을에서 어느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서 자라난 루도비코는 예수회 대학에서 교육받은 후 1700년에 파리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그의 첫 임지는 푸아티에의 한 병원이었는데, 그는 이 병원을 떠나기 전에 일단의 여성 그룹을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가 후일 ‘지혜의 딸 수녀회’가 되었다.


그는 주로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설교하였고, 클레멘스 11세 교황에게서 교황청 선교사로 임명되었다. 그 뒤 프랑스 서쪽 브레타뉴 지역을 다니면서, 영원한 지혜의 신비이시며 강생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였다. 또한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이르는 성덕의 길을 가르쳤으며, 특히 마리아 영성에 대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의 주요 신심은 마리아와 묵주기도였다. 그는 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1715년 그는 수 명의 사제들을 규합하여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주요 신심은 마리아와 묵주기도였다. 그는 이 신심을 전파하기 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이란 책을 저술하여 큰 영향을 끼쳤다. 1715년 그는 수 명의 사제들을 규합하여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였다.


여기서 성 루도비코의 가르침의 핵심을 인용하여 들어보도록 하자. “영혼을 마리아께 봉헌하면 할수록 그 영혼은 더욱더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될 것입니다. …… 이 신심의 가장 훌륭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거룩한 세례 서약의 완전한 갱신입니다. 사실 그 신심으로 그리스도 신자는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이렇게 마리아를 통하여 온전히 그리스도의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복되신 동정녀께 자신을 봉헌하면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 봉헌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와 결합하시고 우리를 당신께 결합시키시려고 선택하신 가장 알맞은 길이신 동정 마리아께 우리를 봉헌하는 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바쳐야 할 궁극 목적이신 주 예수님께 우리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 하느님이십니다.”



성 루도비코는 1716년 4월 28일 선종하였다. 뛰어난 성모신심으로 그는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주보성인이시고, 교회는 그의 축일을 4월 28일에 지낸다.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문화동 본당 주임)]

[이달의 성인] 성모님과 묵주기도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 그리뇽

(신부, 설립자, 증거자, 몽포르, 1673~1716년)


“어떤 성인도 레지오 마리애의 발전에 루도비코 성인만큼 큰 역할을 한 이가 없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 이 교본은 그분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레지오 마리애의 기도문들은 바로 그분의 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분은 레지오 마리애의 참된 스승이시다. 따라서 레지오 마리애가 그분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거의 도의적 의무가 될 만큼 마땅한 일이다”(레지오 마리애 교본 12장 3항).


레지오 주회를 할 때마다 바치는 시작기도문에 등장하는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께서는 레지오 마리애 창시에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이십니다.


프랑스의 몽포르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나신 성인께서는 어려서부터 성모상 앞에서 자주 기도하며 성모신심이 각별하셨습니다. 그래서 견진성사 때 세례명 루도비코에 마리아라는 성모님의 이름을 덧붙였습니다. 1700년 6월 5일에 사제로 서품을 받으시고 첫 부임지로 병원 사목을 맡으셨는데 도시 빈민을 수용하고 있던 병원에서 ‘지혜의 딸들’ 수녀회를 창설하기도 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시며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성모신심을 권장하는 성인의 활동이 이단의 방해를 받았지만 클레멘스 11세 교황님으로부터 교황 파견 선교사로 임명 되신 후에는 16년 동안이나 프랑스 전역을 걸어 다니시며 그리스도의 십자가 신비와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이르는 성덕의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특히 성모님과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전하기 위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등 많은 책을 저술하셨으며 1715년에는 ‘마리아 선교회’를 창설하셨습니다.


1716년 4월 28일 43세의 나이로 선종하신 성인께서는 1947년 비오 12세 교황님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셨습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창설을 미리 예언까지 하신 루도비코 성인께서는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주보성인으로 공경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가장 위태로운 시대에 마귀와 세속과 부패와 싸울 막강한 군단, 즉 예수님과 성모님의 용감무쌍한 남녀 병사들로 이루어진 대 군단이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복되신 동정 성모님께 대한 신심’ 中에서)


[2015년 4월 19일 부활 제3주일 대구주보 4면]


몽포르의 성 루도비코 마리아(St. Louis Maria of Montfort, 4월 28일)

1673~1716년, 프랑스 출생 및 선종, 사제, 레지오 마리애 수호성인.


성인의 이름은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 호칭 기도에 나옵니다. 성인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지요.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은 그만큼 성모 신심이 지극했고, 마리아 신심을 널리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성인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과 삼촌 신부님에게 신앙을 배웠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즐거워했던 성인은 특히 묵주기도를 바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동생과 친구들에게도 묵주기도를 가르쳐주며 함께 바치곤 했습니다. 성모상이나 성모 성화 앞에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묵상에 빠져드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는 견진성사를 받을 때 자신의 세례명 루도비코에 마리아를 더해 루도비코 마리아로 세례명을 바꿨을 정도로 성모님을 사랑했습니다.


일찌감치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은 성인은 파리에 있는 신학교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는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학비를 벌며 가까스로 신학교를 졸업했는데, 그의 학업을 지원해주던 후원자가 전쟁으로 파산했기 때문입니다. 1700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16년간 프랑스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이동할 때 주로 걸어 다녔고 거리에서 잠을 자곤 했습니다. 부랑인이나 노숙인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가진 것을 모두 다 내주곤 했습니다. 누가 신부이고 누가 노숙인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에선 정통 가톨릭 교리가 아닌 얀센주의와 같은 이단 교리가 확산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제와 주교들까지 이단에 동조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성인은 이들에 대항하고 반박하며 올바른 교리와 성모 신심을 전파하는 데 힘썼습니다. 성인을 열렬히 따르는 이들이 있었던 반면, 성인의 이야기를 불편해 하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일부 주교들은 성인이 자신의 교구에서 설교하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인을 알아본 클레멘스 11세 교황은 성인에게 ‘교황 선교사’라는 자격을 주고 그가 어디서든지 강론할 수 있도록 허락해줬습니다.


성인은 성모 마리에 관한 책을 많이 썼습니다. 대표 저서로는 「거룩하신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 개론」 「묵주기도의 비밀」 「마리아의 비밀」 등이 있습니다. 성인이 쓴 책들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필독서이기도 합니다. 성인은 자기 뜻에 따라 함께 하는 이들을 모아 지혜의 딸 수녀회와 마리아 선교회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1947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26일, 박수정 기자]



참고자료

■ 김에디 도허티 저, 이동수 역,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전기, 서울(성요셉출판사),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