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3일

04/22/2016

4월23일(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Saturday of the Fourth week of Easter

 

 

 

+ 사도행전 13, 44-52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해설)  바오로 사도는 선교 여행을 할 때마다 긴 연설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 선교 여행 중에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있는 유다교 회당에서 디아스포라 유다인들에게 설교하였습니다. 이 설교에서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로부터 거부당한 주 하느님의 말씀이 이제는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고 선언하였습니다.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도시 사람들이 거의 다 모여들었다. 45 그 군중을 보고 유다인들은 시기심으로 가득 차 모독하는 말을 하며 바오로의 말을 반박하였다. 46 그러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담대히 말하였다.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먼저 여러분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것을 배척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스스로 합당하지 못하다고 판단하니, 이제 우리는 다른 민족들에게 돌아섭니다. 47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48 다른 민족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주님의 말씀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정해진 사람들은 모두 믿게 되었다. 49 그리하여 주님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50 그러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섬기는 귀부인들과 그 도시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박해하게 만들고 그 지방에서 그들을 내쫓았다. 51 그들은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나서 이코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묵상)  많은 사람들이 바오로 사도의 설교를 들으려고 바오로에게 몰려드는 것을 보고 유다교 광신자들은 바오로의 일행을 박해하고 내쫓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바오로의 설교를 듣고 기뻐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유다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한 것과는 달리 이방인들은 같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감사하였습니다.

 

 

 

 

 

+  요한 14,7-14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해설)  하느님의 모습을 직접 보고자 하는 기대 속에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모든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희망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이런 열망에 제한적인 답을 주었으며 모세에게 허용된 권한은 하느님의 뒷모습만 보는 것이었습니다. 필립보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기를 진정으로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8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14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Holy Gospel of Jesus Christ according to Saint John 14: 7-14

7 If you know me, you will know my Father too. From this moment you know him and have seen him. 8 Philip said, 'Lord, show us the Father and then we shall be satisfied.' Jesus said to him, 9 'Have I been with you all this time, Philip, and you still do not know me? 'Anyone who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so how can you say, "Show us the Father"? 10 Do you not believe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What I say to you I do not speak of my own accord: it is the Father, living in me, who is doing his works. 11 You must believe me when I say that I am in the Father and the Father is in me; or at least believe it on the evidence of these works. 12 In all truth I tell you, whoever believes in me will perform the same works as I do myself, and will perform even greater works, because I am going to the Father. 13 Whatever you ask in my name I will do, so that the Father may be glorified in the Son. 14 If you ask me anything in my name, I will do it.

 

묵상)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만이 하느님에 대한 열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 하느님이 현존하여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며 예수님의 행동은 주 하느님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면 하느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이미 하느님 아버지를 본 것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이 주 하느님의 뜻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뜻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느님의 참 사랑이 전해질 것입니다.

 

 

2016년 04월 23일 토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https://youtu.be/0KB8yY_hs60

How Great Thou Art (acoustic) - Lauren Daigle

 

 

아버지께 가는 길 (2)

+ 요한 14, 7-14

 

1.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으며 예수님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뵐 수 있습니까?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직접 보면서도 이해하지 못한 필립보처럼 나도 예수님을 믿는다면서 또 다른 하느님을 찾지는 않았습니까? 하느님의 사랑을 안다고 하면서 그 사랑 나누기에 미흡하지는 않았습니까?

 

2.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의 이 말씀을 신뢰하고 모든 것을 의탁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이 말씀을 나의 부와 명예와, 건강과 복을 청하는 것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시시의 복자 에지디오(Blessed Aegidius of Assisi)

 

 

축        일 :  4월 23일

신        분 :  수사

활동 지역 :  아시시(Assisi)

활동 년도 :  +1263년

같은 이름 :  아이기디오, 아이기디우스, 에지디우스, 자일스, 지르, 질르

 

 

이탈리아의 아시시 태생인 에지디우스(또는 에지디오)는 성 프란치스코의 초기 동료 가운데 한 명으로 1208년에 수도복을 받았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를 수행하여 아시시 지방의 여러 곳에 복음을 전하였고,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순례를 비롯하여 로마(Roma)와 예루살렘(Jerusalem) 성지를 방문하였으나, 사라센인들을 회개시킬 목적으로 갔던 튀니스(Tunis)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튀니스의 신자들은 그의 뛰어난 신앙심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까봐 그를 억지로 배에 태워서 돌려보냈다고 전해온다.

 

그 후 그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살았는데, 1243년경부터는 몬테 라피드(Monte Rapido)의 은둔소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자주 탈혼하였고 체토나(Cetona)에서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다. 그는 초기 프란치스코 회원들의 모델로서 존경받는다. 성 프란치스코의 잔꽃송이에 그에 대한 행적이 나오는데, 성 프란치스코는 그를 ‘원탁의 기사’로 불렀다. “에지디우스 수사의 금언”이란 책에서는 그의 인간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낙천주의 그리고 뜻 깊은 유머가 빛을 발한다. 그는 질(Gile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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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6년 4월23일(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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