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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와 성녀 펠리치타(Felicity)


축 일 : 3월 7일

신 분 : 순교자들

활동 지역 : 카르타고(Carthago)

활동 년도 : +202년

같은 이름 : (페르페투아)벨벳뚜아, 뻬르뻬뚜아, 페르페뚜아

(Felicity) 펠리치따스, 펠리치타스, 펠리키따스, 펠리키타스, 필리서티




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와 성녀 펠리치타(Felicitas) 및 4명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초기 순교자들의 전기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이다. 그 일부는 성녀 페르페투아 자신이 그리고 다른 일부는 나머지 순교자들이 기록한 글에 의해서 하나의 전기가 완성되었다. 성녀 비비아 페르페투아(Vibia Perpetua)는 좋은 가문의 딸로서 순교 당시에 귀여운 아기를 팔에 안은 젊은 부인이었고, 성녀 펠리치타는 여종이었다. 나머지 4명의 순교자는 노예였던 성 레보카투스(Revocatus), 성 세쿤둘루스(Secundulus), 성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그리고 성 사티루스(Satyrus)이다. 로마 제국 내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황제의 칙령에 따라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Carthago)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검거할 당시 성 사티루스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예비자였으나 모여 있던 집이 포위될 순간에 모두 세례를 받고 함께 감옥에 갇혔다.


그 당시에 성녀 페르페투아는 처음으로 하늘을 오르는 사다리를 꿈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신비한 어느 사제의 방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교도의 사제였다. 성녀는 “나는 그 노인의 불행을 슬퍼하였지요.” 하며 아기를 안고 걱정하던 차에 체포되었다. 재판정에서 그들은 모두 맹수의 밥이 된다는 판결을 받았다. 감옥에 돌아온 뒤에 성녀 페르페투아는 두 번째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어릴 적에 죽은 동생을 보았다. 그리고 성 사티루스는 자신이 천국에 당도한 꿈을 꾸었다. 이윽고 순교의 날이 왔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너희들이 우리를 심판하였으나 하느님은 너희를 심판할 것이다!” 성녀 페르페투아의 일행은 “그리스도의 신부답게, 하느님의 귀여운 자녀답게” 형장으로 나갔다. 맹수들이 덤벼들자 그들은 서로를 붙잡고 의지하다가 한 사람씩 죽어갔다.


출처 : 가톨릭 홈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순교자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시인 203년 카르타고에서 순교했다. 그들 자신의 증언과 당대 저술가의 글에서 모아 놓은 매우 정확한 그들의 [순교 사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카르타고의 거룩한 순교자들의 [순교 사기]에서

(Cap. 18,20-21: edit. van Beek, Noviomagi, 1936, pp.42. 46-52)


그들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아 간택되었다


승리의 날이 밝아 오자 그들은 마치 천국으로 향하는 듯 유쾌한 표정으로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마음 설레이며 감옥에서 원형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먼저 페르페투아가 소에 받혀 허공에 떴다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가 다시 일어서서 펠리치타가 땅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달려가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함께 섰다. 관객들의 광포가 가라앉자 그들은 "사나비바리아"라고 하는 문으로 호출되었다. 거기에서 당시 그와 친밀했던 예비자인 루스티쿠스가 페르페투아를 부축해 주었다. 페르페투아는 너무도 깊은 탈혼에 빠져 있었으므로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모든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는 가운데 "우리가 언제 소에게 내던져 지나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이미 내던져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 몸과 옷에서 허다한 광포의 흔적을 자기 눈으로 볼 때까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다음에 자기 오빠와 그 예비자를 부르고는 이렇게 말했다. "믿음에 견고하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우리의 고통이 여러분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다른 문에 있던 사투루스도 병사인 푸덴스를 격려하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고 예언한 대로 지금까지 나는 짐승에게 받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진심으로 내 말을 믿어 주십시오. 나는 거기에 나아가 표범에게 한 번만 물어뜯기면 끝이 날것입니다." 이 살인 공연이 거의 끝나 갈 무렵 그는 표범에게 내던져졌고 표범이 한 번 물어뜯자 피가 낭자하였다. 표범이 다시 물려고 돌아섰을 때 관중들은 그것을 제2의 세례로 인정하고 "피로 씻기운 자를 구해 주어라. 피로 씻기운 자를 구해 주어라."고 외쳤다. 이렇게 피로 씻기운 이는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사투루스는 병사 푸덴스에게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신앙을 잊지 말고 나도 잊지 마십시오. 이 모든 고통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고 오로지 이 일로 인해 강해지십시오." 그리고는 푸덴스의 손가락에서 반지를 달라고 하여 자기 상처에 담그고는 자기 피의 증거와 기념으로서 그에게 유산으로 되돌려 주었다. 그는 의식을 잃었고 다른 이들과 함께 목을 자르는 곳으로 내던져졌다.


군중이 순교자들의 몸이 창에 찔리는 광경을 살기에 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도록 그들을 경기장 가운데로 끌어내 달라고 청했을 때, 순교자들은 자발적으로 일어나 군중이 원하는 곳으로 건너갔다. 그리고는 평화의 예식으로 순교를 완수하고자 서로 입맞추었다.


그들 모두는 움직이지 않고 침묵 중에 칼을 받아들였다. 사투루스는 페르페투아를 부축하여 있었기 때문에 맨 앞에 올라가 맨 먼저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페르페투아는 아마도 고통을 받고 있었음인지 내려치는 칼이 뼈에 닿는 것을 느끼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는 자원하여 서투른 초년생 검객의 손을 이끌어 자기 목에 갖다 대었다. 마귀까지 무서워 했던 그런 용맹한 여인이 스스로 자원하여 검객을 도와 주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그를 죽일 수 있었겠는가! 오, 더할 수 없이 용감하고 복된 순교자들이여! 여러분은 정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받아 간택되었습니다.

[교회의 빛나는 인물들]

성녀 페르페투아, 성녀 펠리치타


장인산 베르나르도 신부(문화동 본당 주임)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는 202년 3월 7일 카르타고의 원형경기장에서 다른 동료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여 교회를 빛낸 성인들이다. 이 두분 성녀의 순교에 관한 기록은 가장 신뢰할 만한 가치가 있는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수난기]에 실려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도 이 수난기를 자주 인용하였다. 두 성녀들은 4세기경부터 3월 7일에 로마에서 순교자로 공경을 받았고, 성인호칭 기도문에도 수록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3-211)는 제국 내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을 반포하였고, 이에 불응할 경우 혹독하게 처벌하였다. 그로 인해 박해가 심해졌다. 203년에 카르타고의 귀족으로 교리를 배우고 있던 22세의 페르페투아와 임신 8개월이었던 하녀 펠리치타, 그리고 레보카토, 사투르니노, 세쿤둘로, 그리고 그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던 사투로가 체포되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수난기]에는 그들이 갇혀있던 감옥의 무서운 분위기와 그들이 느꼈던 엄청난 두려움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자, 신앙이 없던 페르페투아의 아버지는 딸에게 배교를 설득하였다. 하지만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감옥에서 세례를 받았다. [2014년 3월 16일 사순 제2주일 청주주보 3면] 페르페투아는 감옥에서 환시를 보았는데, 용과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사다리를 올라가 푸른 풀밭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 있는 아름다운 곳에 다다르는 환시였다. 페르페투아는 그녀의 어린 아들을 감옥으로 데리고 와서 보여 주며 거듭 설득하고, 광장에서 이들의 무죄를 외치기도 하였지만, 결국 그들은 로마 황제를 위해 열린 축제에서 짐승들의 먹이로 바쳐졌다. 한편 펠리치타는 다른 순교자들과 한 곳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임신한 여인을 처형하는 것이 법에 어긋나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형장에 끌려가기 전에 아이의 출산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펠리치타는 엄청난 산고를 겪고 감옥에서 여자아이를 조산하였다. [2014년 3월 30일 사순 제4주일 청주주보 3면] 아기는 그리스도인인 한 여인에게 입양되었고, 그녀는 다른 순교자들과 함께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함께 붙잡혔던 동료들 가운데 세쿤둘로는 옥사하였고, 다른 이들은 매질을 당한 뒤 원형 경기장으로 끌려갔다. 제일 먼저 페르페투아가 소에 받혀 허공에 떴다가 뒤로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섰다. 페르페투아는 펠리치타가 땅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고 달려가 손으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이들은 경기장 밖으로 나왔지만, 사투로는 표범에게 내던져져 피가 낭자하였다. 그러나 사투로 역시 죽지 않자,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를 비롯한 동료들은 참수될 장소로 보내졌다. 그들은 평화의 예식으로 서로 입을 맞춘 뒤, 사투로가 먼저 참수되었다. 이 후 페르페투아가 참수되었으며, 펠리치타 역시 목이 잘려 죽음을 당하였다.


순교하기 전 페르페투아는 또 다른 환시를 보았는데, 그것은 병으로 죽은 막내 동생이 천국에서 그녀를 따라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의 축일은 모든 그리스도 교회에서 매우 유명한 축일이 되었으며, 초기의 로마 전례력과 시리아 전례력에도 수록되었다. 1907년에는 카르타고에 있는 성인들의 무덤 위에 대성당이 세워졌다. 교회는 그들의 축일을 3월 7일에 지낸다. [2014년 4월 6일 사순 제5주일 청주주보 3면]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19-421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녀 페르페투아와 성녀 펠리치타스 순교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68-7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1권 -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5년, 8884-888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