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5일

02/14/2016

 

 

2016년 2월 15일(자) 사순 제 1주간 월요일

 

 

 

+ 레위기 19, 1-2. 11-18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해설)   주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하느님의 백성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레위기의 근본정신은 주 하느님을 바르게 섬김으로써 하느님의 거룩함을 본받아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은 레위기의 중심이며 구약 성경에 있어서의 최고의 사회도덕 기준인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사랑의 계명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일러라.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11 너희는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속여서는 안 된다. 동족끼리 사기해서는 안 된다. 12 너희는 나의 이름으로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을 더럽히게 된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는 이웃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품팔이꾼의 품삯을 다음 날 아침까지 가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14 너희는 귀먹은 이에게 악담해서는 안 된다. 눈먼 이 앞에 장애물을 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는 하느님을 경외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15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중상하러 돌아다녀서는 안 된다. 너희 이웃의 생명을 걸고 나서서는 안 된다. 나는 주님이다. 17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동족의 잘못을 서슴없이 꾸짖어야 한다. 그래야 너희가 그 사람 때문에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 18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묵상)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나의 표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흘러 넘쳐 진정 이웃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 마태오 25, 31-46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해설)  종말에 최후의 심판관이신 예수님께 심판받을 사람은 인류 전체입니다. 종말 심판의 기준은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란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불쌍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41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42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43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44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46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묵상) 최후의 심판관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베푼 사랑을 당신 자신에게 베푼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그러므로 종말 심판의 기준은 신앙도 종파도 아니고 기도나 예배도 아니고 오직 사랑과 자비입니다. 주님 종말 심판의 기준은 사랑입니다. 참 사랑은 모든 종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 영성체 후 묵상

 

굶주리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감옥에 갖히고 병든 사람에게는 이웃의 손길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말 심판의 기준이며 사순시기 동안 특히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셨기에, 우리도 주위에 있는 소외된 이웃들과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2016년 02월 14일 일요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조창수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O THE DEEP, DEEP LOVE OF JESUS - Selah
 

 

최후의 심판

+ 마태 25,31-46


1.  나는 나의 종말을 기다리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 나라는 어떤 것입니까? 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맞을 준비를 잘하며 살고 있습니까? 삶 속에서 어떤 때 나는 주님의 현존을 느낍니까? 주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내가 주님의 존재를 느끼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나는 하느님의 나라를 너무 먼 곳에서 찾고 있거나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2.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병들고, 굶주리고, 헐벗고, 감옥에 갇힌 이들은 무슨 의미입니까? 나의 주변에 병들거나 헐벗거나 굶주린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까? 나는 애써 그들을 외면하려 한 적은 없었습니까? 무엇이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까? 내가 정말로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성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Saint Claude de la Colombiere)

 

 

 

축        일  :  2월 15일

신        분  :  신부, 설교가

활동지역  :  프랑스

활동연도  :  1641-1682년

같은이름  :  글라우디오, 글라우디우스, 글로드, 끌라우디오, 끌라우디우스, 끌로드, 끌로우드, 콜롬비에레, 콜롬비에르, 클라우디오, 클라우디우스, 클로우드

 

 

 

성  클로드 드 라 콜롱비에르는 프랑스 그르노블(Grenoble) 근교에서 태어났고, 그의 가정은 매우 신심이 깊었고 또 유복한 가문이었다. 유아기에서 특기할만한 사항은 없지만 리옹(Lyon)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수도생활에 대한 강력한 이상에 사로잡혔으나, 얼마 동안 이를 억제하다가 끝내는 입회하였다. 아비뇽(Avignon) 수도원에서 수련기를 보내고 다시 철학 과정을 이수한 뒤에는 5년 동안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이 당시에 아비뇽에는 정치적 불안이 일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잘 평정되어 아비뇽 주민들은 평화를 되찾았는데, 이때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의 시성식과 성모 방문 수녀회의 두 수도원이 이 평화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성 클로드는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의 시성식 때 생애 처음으로 설교하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그의 설교는 대성공이었다. 이어서 파리(Paris)로 가서 신학과정을 마쳤는데, 그곳에 머물면서 그는 프랑스의 지성이 한데 모이는 학문적 분위기에 푹 빠졌다. 그는 당시의 저명인사인 콜베르와 친분을 가졌으나 수도회 안에서는 별로 친구가 없었다. 사제로 서품된 후에는 아비뇽 대학에서 설교가로 활약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그 후 종신서원을 발하기 전에 행한 대피정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그는 특히 예수성심 공경에 전념하였고, 예수님의 생애 나이와 같은 33세 때에는 세상에 대하여 더욱 철저히 죽어야 한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종신서원을 발한 두 달 뒤에 그는 파레이르모니알(Paray-le-Monial)의 예수회 원장이 되었다. 이때 그는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Margarita Maria Alacoque, 10월 16일)를 만나 그녀를 지도하였다.

 

그의 다음 임무는 영국에서의 선교활동이었다. 영국내의 가톨릭 입장이 최악의 상태에 빠졌을 때 성 클로드는 놀라운 성공을 거두어 영국 가톨릭 재건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성공은 많은 반대자들을 만들게 되어 투옥되었다. 그는 비록 순교의 영광을 입지는 안았으나 영국에서 추방령을 받고 쫓겨나야 했다. 감옥생활로 크게 손상된 그의 건강은 최악의 상태였다. 결국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1682년 2월 15일에 운명하였다.

 

흔히 우리는 그의 지성은 예리하였고, 판단은 정확했으며, 예술 애호가였고, 프랑스 아카데미의 올리비어 파투뤼와의 친분을 높이 칭송한다. 그는 1929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92년 5월 31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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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_2016년 2월15일 (자) 사순 제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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